4·13 총선 참패로 '아노미 상태'에 빠진 새누리당이 사태 수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놓고 또 진통을 겪고 있다.

당 지도부가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일괄 사퇴했지만,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원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과연 적절하냐는 의견이 당내에서 분출하는 것이다.

원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추대에 대한 반대론은 비박(비박근혜)계를 중심으로 거센 상황이다. 원 원내대표가 '신박(새로운 친박)'으로 분류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비박계 김재경 의원은 17일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필승지국(必勝之局)을 유사 이래 최초 2당으로 만든 잘못을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원 원내대표를 향해 "비대위원장 (내정직)에서 물러나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출현으로 3자 구도가 만들어진 상황에서도 수도권 선거에 참패, 더불어민주당에 제1당을 내어주게 된 책임을 원 원내대표도 나눠서 져야 한다는 것이다.

비박계 중진인 심재철 의원도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새 술을 헌 부대에 담아 팔면 누가 새 술이라고 믿겠느냐"며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도리"라고 비판했다.

역시 비박계로 분류되는 이혜훈 당선인은 연합뉴스에 "'공천파동'에서 자유로우면서 사심이 없고 당내 사정을 잘 아는 경륜 있는 인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위촉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원 원내대표의 비대위원장 추대에 불만을 내비쳤다.

그는 다만 외부 인사를 영입할 경우 특정 계파의 이해에 휘둘리고 책임만 뒤집어쓰는 '바지사장' 역할에 그칠 공산이 큰 만큼, 비대위원장은 내부 인사가 맡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원 원내대표 역시 자신이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비대위원장을 맡기에 부적절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반대론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고, 선거 패배에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서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적절치 않다는 것은 맞는 얘기"라고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비대위는 원내대표 선출과 전당대회 관리를 위해 길어야 2∼3개월 굴러갈 텐데, 당 지도부가 와해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대안이 없고 당 수습이 시급하다는 판단 아래 수락한 것"이라며 "당장 누군가는 운전대를 잡아야 할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 14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원 원내대표는 자신을 포함한 최고위원 전원사퇴를 주장했으나 다른 최고위원들이 만류했고, 차기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자는 제안도 했지만 김무성 대표가 "당무와 원내 협상은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이 총선에 불출마한 김태호 최고위원의 비대위원장 추대를 거론했으나, 김 대표가 제동을 걸어 결국 원 원내대표가 추대됐다는 후문이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도 연합뉴스에 "'관리형' 비대위를 꾸리는 것에 불과한데, 이를 두고 또 옥신각신하면 국민이 더 실망하고 친박이든 비박이든 공멸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오래 끌고 가선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비대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당내 파열음은 친박계와 비박계의 주도권 다툼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주류(친박계)가 2선 퇴진해야 한다는 비박계와, 일단 급한 대로 원 원내대표가 당을 수습해야 한다는 친박계의 시각이 엇갈리는 것이다.

이 같은 대립 양상은 오는 22일 위원장 선출을 위한 전국상임위원회 회의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내홍이 심해질 경우 차기 당권을 둘러싼 친박계와 비박계의 전면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