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의 '공공기관 경영합리화 연구 용역' 결과, 경제성이 없고 업무 효용성이 떨어져 '폐지하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이 내려진 곳은 모두 6곳이다. 이들 기관 모두 "기관의 특성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단순히 수익성이라는 잣대만 들이댄 결과"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문화와 청소년 복지 증진, 교육 콘텐츠·과학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세워진 기관인만큼 경제적인 논리로만 존폐 문제를 다루기가 어렵다는 게 공통된 주장이다. 도의회도 해당 기관들의 존립을 요구하며 힘 싣기에 나서 이 같은 반대 여론은 점점 거세지는 추세다.
지난 19일에는 도의회 농정해양위에서 경기농림진흥재단의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고, 20일에는 경제과학기술위와 문화체육관광위, 여성가족교육협력위에서 경기도과학기술진흥원, 경기도수원월드컵관리재단, 경기도문화의전당, 경기도청소년수련원, 경기영어마을 폐지론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이들 기관은 무작정 문을 닫으라고만 하지 말고, 조직 개편과 기능 전환 등을 통한 진정한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폐지'는 아니지만 다른 기관과 통·폐합될 처지인 10개 기관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달라"며 밀어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들은 공공기관 내부에서만 문제를 찾을 게 아니라 지자체 차원에서도 공공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해당 업무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농림진흥재단
단계적 기능전환 과정 무시
이번 '공공기관 경영합리화 방안 연구용역결과'에서는 경기농림진흥재단을 폐지하고 경기도농식품유통공사를 신설하는 게 타당하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9월 경기도에서 추진한 유통공사 설립 타당성 용역 결과와는 배치되는 내용인데, 해당 용역에서는 농림진흥재단과 업무가 중복되는 농식품유통공사를 신설하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농림진흥재단을 확대 개편해 수익 모델을 창출하고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을 검토해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우리 재단은 농식품공사 설립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이미 규정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했다. 현재는 수익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차원에서, 농식품이 대량으로 필요한 시장에 공공영역이 개입해 생산농가가 추가 비용 없이 원활하게 납품할 수 있는 '농식품 유통 하이웨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모두 무산시키는 '전면 폐지'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무조건 문을 닫으라고 할 게 아니라, 기존 농림진흥재단의 기능을 조정해 단계적으로 경기도농식품유통공사로 전환하는 진정한 '합리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경기도과학기술진흥원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홀대
경기도는 지난 2010년 지방자치단체에선 처음으로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기업들의 기술 개발 지원을 전담하는 경기도과학기술진흥원(이하 과기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6년여만에 전국과학기술분야 인적자원의 31.6%, 기업부설연구소의 31.9%를 보유하는 등 전국 최고의 연구 개발 역량을 쌓았다.
지난 6년 간 도내 1천여개 중소기업에 R&D를 지원했고 바이오·제약기업에 공용장비를 23만 건 지원했을 뿐 아니라, 판교·광교테크노밸리 등 대형 R&D 사업을 유치하는 데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과기원은 이미 과학기술센터·경기바이오센터·천연물신약연구소 등 3개 기관을 통합해서 만든 경기도 과학기술정책의 컨트롤타워다. 그러나 용역 결과는 경기도가 과학 기술을 포기하겠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과학기술투자 활성화 방향과도 역행하는 것이다.
앞으로 과학 기술은 그 중요성이 더욱 빛을 발할 전망이다. 인공지능(AI)과 정보통신기술(ICT) 등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 100년이 과학 기술에 달려있다. 경기도는 전담 기관을 폐지한다는 과학 기술 '홀대'에 대해 곱씹어봐야 한다.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실사조차 안하고 결과 내려
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은 축구 사업을 진흥시키는 곳이 아니라, 공공체육시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게 주 목적인 곳이다. 경기장이 없어지지 않으면 재단의 존립 가치 역시 유효하다는 얘기다. 월드컵경기장이 활성화되려면 지자체에서도 적극 나서야 한다. 재단에만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
당장 남는 땅을 개발하려고 해도 경기도나 수원시 중 한 곳이 소극적이면 뭔가를 할 수가 없다. 또 자체적으로 '군살'을 빼기 위해 노력해왔다. 150명 내외였던 직원이 올해는 25명까지 줄었고 대부분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인건비 비중이 14%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용역 결과에선 30%라고 한다.
현장실사조차 하지 않은 채 분석이 이뤄졌다. 취지가 좋아도 정당성이 부족하면 저항이 일 수밖에 없다. 무작정 폐지할 게 아니라 경기도와 수원시로 양분돼있는 관리 주체를 일원화하는 문제등부터 살펴봐야 한다.
수원FC가 수원삼성과 월드컵경기장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방안 등도 검토해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축구진흥사업 전반을 진지하게 되짚어봐야한다는 얘기다.
#경기도문화의전당
허위 자료로 문화향유권 뺏어
경기도문화의전당은 도민의 문화 복지를 높이기 위해 세워진 곳이지, 경영을 잘 해서 수익을 창출하라고 세운 곳이 아니다. 단순히 수익성을 잣대로 해서 존폐를 논하는 것은 전당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고, 1천290만 도민의 문화 향유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용역 결과도 오류 투성이다. 수원과 용인시민들만 전당을 찾는다고 하는데, 전당의 공연은 31개 시·군 전역에서 이뤄진다. 지난해만 봐도 관람객 46만명 중 수원에서 온 관람객이 14만9천명, 수원외 지역에서 온 관람객이 31만1천명이었다.
또 예술단의 활동성이 열악하다고 하는데 지난해 기준 전당 내 4개 단체가 공연한 횟수는 402회로 다른 광역단체 예술단과 비교해봐도 훨씬 많다. 지난해 고객 만족도도 84.5%로, 다른 예술행사 관람 만족도에 비해 월등히 높다.
사실과 크게 다르거나 허위인 자료를 기반으로 '폐지'라는 결론을 도출한 용역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 경영진은 물론, 노조에서도 성명을 두 차례나 발표하는 등 폐지에 결사 반대하고 있다.
#경기도청소년수련원
씨랜드·세월호 교훈 또 잊었나
경기도청소년수련원은 1999년 민간업체가 안전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아 발생한 '화성 씨랜드 화재 사고' 이후 도 차원에서 청소년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며 2001년에 세운 곳이다. 그런데 지금은 9억원을 절감하기 위해 수련원을 민간에 위탁해야 한다는 게 연구 용역을 통해 내려진 결론이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와 2013년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실종 사고 모두 민간 업체가 안전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벌어진 사고다.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경제적 논리 때문에 청소년 정책의 공공성을 등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여기에 청소년 범죄가 늘어나며 청소년 정책에 대한 공적·사회적 관심을 더 높여야 할 때다.
이에 청소년 활동 지원의 중심 기관인 청소년수련원은 공공에서 계속 업무를 맡아야 한다. 정부가 안산 단원구에 안전체험관을 짓게 되면 수련원 이용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있던 것도 없앤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북부에 수련원을 하나 더 짓는 등 공공 차원의 정책적 관심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기영어마을
자립도 톱3 기관 폐지 이해안돼
경기영어마을은 도 공공기관 25곳 중 자립도가 3위 안에 든다. 도에서 지원받는 것은 시설운영비 정도고 인건비 등은 모두 자체적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예산 절감을 이유로 폐지 대상으로 거론되는 점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이미 지난해부터 파주·양평 영어마을을 각각 창의·인성 테마파크로 개편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닫으라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영어 교육 열풍이 10여년 전 영어마을을 처음 조성할 때보다 가라앉았고 지금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영어 교육을 받을 수 있어, 영어마을을 이대로 유지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 대안 없이 무조건 문을 닫아야한다는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
도가 추진하는 '창의·인성'의 큰 틀 안에서 청소년 관련 기관과 영어마을을 통합하는 등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실질적인 '공공기관 경영합리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