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인재(人災)였다. 지난 22일 여수에서 발생, 9명의 사상자를 낸 무궁화호 탈선 사고는 선로변경 구간에서 감속 운행 규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였다. 하마터면 더 큰 참사로 번질 뻔했다. 그나마 승객이 적은 평일 새벽이라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사고열차는 서울 용산역을 출발하기 전 코레일로부터 사고 구간에서 선로 기반을 다지기 위한 궤도 자갈 교환 작업 중이기 때문에 선로를 변경하고 서행 운전해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통상 시속 45㎞ 이하로 운행하도록 관제실에서 통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날 사고 열차는 127㎞의 속도로 진행했다. 관제지시를 외면한 '인재'였던 것이다.

경찰은 이 열차를 운전한 부기관사 정모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입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사후약방문 처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부기관사의 부주의로 드러나고 있지만, 이번 사고는 고질적인 안전불감증과 코레일, 정부의 느슨한 철도 안전 대책 등이 사고를 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코레일 사장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나마 최연혜 사장이 전문성을 인정 받았지만, 최 사장은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마를 위해 사퇴해 현재 코레일 사장은 공석이다. 사장 부재로 인한 조직 기강 해이가 사고를 불렀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문제는 열차 탈선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데 있다. 열차 탈선사고는 2013년 5건에서 2014년에는 6건으로 늘었다가 2015년 3건으로 줄었지만 올들어서는 벌써 4월까지 4건이나 발생하는 등 오히려 전반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 탈선사고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철로 옆까지 대형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자칫 철로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지난 1998년 3월 78명이 사망한 구포역 탈선 전복 사고의 경우, 주변 공사현장에서 발파작업과 부실공사 등으로 선로가 내려앉으면서 열차가 탈선해 뒤집히면서 발생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당국은 기관사에 대한 안전교육은 물론, 선로 이상이나 열차 불량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