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횡포' 법적대책 없이는 감정노동자 못 지켜줘
국회마저 '특권 내려놓기' 법안통과 여전히 오리무중
근로자들 상처입지 않도록 관련법안 빨리 마련돼야


2016050101000028700001671
김신태 지역사회부장
'갑질' 논란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과 백화점 매장 직원의 무릎을 꿇린 고객, 자신의 운전기사에서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기업 대표 등등…. 잊을 만하면 언론에 오르내리는 갑질 횡포 사례다.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상적으로 일컫는다. 부와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갑)의 횡포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은 불이익을 받고 상처를 받는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4월 내놓은 '감정노동 근로자의 감정노동실태, 위험요인, 건강영향 연구'란 연구보고서에도 갑질 사례는 등장한다. 이 연구서를 보면 고객 대면 수준이 높은 50개 직종 노동자 1천198만명중 35.1%인 419만명이 고객에 의한 정신적·성적 폭력에 수준 이상으로 노출된 것으로 나타난다.

'갑질'은 감정노동자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갑을' 관계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직원과 고객, 상급기관과 하급기관, 사용자와 노동자, 학부모와 교사, 교수와 제자 등등 모든 관계에서 '갑을' 관계는 형성된다.

'갑을' 관계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 대우를 받기 원한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갑질'을 하게 된다. 상대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받으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롯데그룹이 최근 '갑질'과 관련된 책자를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마음 다치지 않게'란 제목의 이 책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내 배포용이다. 고객과의 대면이 많은 업종의 롯데그룹 측은 이 책자에서 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등등 계열사별로 다양한 갑질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성희롱, 추행 같은 범죄 사례들까지 수집해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갑질' 관련 책자를 내놓은 롯데그룹 조직에서 조차도 협력업체 등에 대한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뉴얼(지침서)은 매뉴얼 일뿐이다. 유통업체 특성상 직원들은 항상 일정한 친절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일부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는 한 피해자는 늘 생길 수밖에 없다.

법적인 대책 없이 한 업체의 사내 캠페인과 매뉴얼 만으로는 감정노동자들을 지켜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 대책을 마련해야 할 국회도 갑질(직권을 이용한 특권) 논란을 피해 갈 수 없다. 국회의 갑질은 해묵은 비판 대상이다. 지난 19대 국회가 들어선 뒤 국회의원에 대한 '정치 쇄신' 요구가 잇따르면서 여야는 앞다퉈 특권(갑질) 내려놓기 법안(불체포특권 폐지 등)을 발의했지만 법안 통과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4·13총선 과정에서도 후보들은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각종 공약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의 특권 내려놓기는 그동안의 국회 모습을 봤을 때 불투명해 보인다.

마침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노동절)'이다. 근로자들이자 국민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갑질 횡포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관련 법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 아직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신조어인 '갑질'. 유행어 수준인 이 단어가 앞으로도 국어사전에 정식(표준어)으로 등록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공자의 효경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으면, 지위가 높아도 위태롭지 않다. 절제하고 아껴 삼가 법도에 맞게 하면, 가득 차더라도 넘치지 않는다." 곰곰이 되새겨 봄 직한 말이다.

/김신태 지역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