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로 지목 당한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 있어
가족이라는 이유 처벌 안원해
상담원 처우개선 문제도 시급
"많은 분들이 노인학대 문제를 아동학대와 비교하곤 하는데, 아동학대와는 상당히 다른 문제입니다."
성남에 위치한 경기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10년 가까이 학대피해 노인들의 상담과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권미해실장(사회복지사)은 자신이 겪은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노인학대와 아동학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동학대 행위자는 주로 젊은 부부들이 많고, 아동이 특별히 잘 못하는 게 없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동학대를 하는 사람은 과도한 폭력성을 보이거나 분노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등 학대 행위자에게 원인이 많다"며 "반면, 노인학대의 경우 학대의 원인이 행위자에게 있을 수도 있고, 학대를 당하는 사람에게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아무도 잘못을 한 사람이 없는데 학대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90세 할머니가 혼자 거주하며 동네 주민들이 주는 음식으로 연명한다는 신고가 들어와 자식들을 만나봤어요. 그런데 그분의 아들과 며느리 모두 70세가 훌쩍 넘었고, 더구나 아들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어요. 며느리는 '남편이 위독해 오늘 내일 한다. 나도 죽을 지경이다. 시어머니 학대 운운 할 거면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했죠."
권 실장은 또 다른 사례도 들었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자식한테 경제적 학대(방임)를 당한다고 신고가 들어와 현장을 나가봤어요. 그 어르신은 '자식이 대학교수인데 용돈을 잘 안 준다'고 하소연 했지요. 그런데 정작 그분의 아드님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분이었고 월급이 100만원 정도밖에 안 돼 처자식 먹여살리기도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르신은 아들의 경제상황을 이해 못하고 무작정 용돈을 안 준다고 했던 것이지요."
그는 "이렇듯 노인학대 문제는 '고령화 사회'에 큰 원인이 있고, 학대신고를 받았다고 해서 당사자를 무조건 처벌한다든가 경찰이 투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인학대 가해자라고 지목당한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인 경우도 많다. 학대 행위자와 피해를 입은 노인들이 함께 치료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인보호전문기관의 업무에 대해 그는 "저희에게 신고 전화를 한 어르신들은 이 곳이 사법 기관이 아니라고 하니 하소연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전화하기도 하고, 처음엔 가해자의 처벌을 원한다고 했다가도 '전화하고 났더니 속이 풀렸다'며 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또 "만약 피해자가 현장조사를 원할 때에는 우선 학대행위자와 멀리 떨어진 곳, 어르신들이 최대한 편하게 느끼실 수 있는 곳에서 상담을 진행하는데 당분간 자식과 떨어져 있고 싶은 분들은 임시 보호소인 '쉼터'로 안내해 드리기도 하고, 학대피해가 심한 경우 요양시설로 입소를 도와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대 행위자가 가족이기 때문에 학대를 받았어도 처벌을 원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권 실장은 끝으로 "사실 노인분들이 나이 어린 상담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상담원들이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는 것이 숙제다"라며 "노인보호전문기관이 노인학대를 막는 최전선에 있고, 사실 가장 필요한 것은 '상담원들의 질적 향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담원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 채 1년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상담원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람'에게 투자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