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비엔 누렇다 못해 까맣게 바싹 마른 헌화만이 덩그렇게 놓여 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을 맞고 있었다. 휴게소에는 10여대의 차량이 있었지만 차에서 내린 누구도 건물에서 10여m 떨어진 화강암 탑이 우리민족 최대의 비극인 6·25에 참전한 유엔군들을 위한 기념비란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24일 오전 11시, 오산시 내삼미동 산70의6에 마련된 유엔군 초전기념비의 을씨년스런 풍경은 잊혀져가는 6·25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6·25전쟁 발발 51주년. 아직도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고리타분한 관용어가 돼 버렸다.
휴게소를 찾은 이모(46·군포시 부곡동)씨는 “동생집을 방문하기 위해 매달 5~6번 이곳을 지나다닌다”면서도 “기념비를 둘러본 적은 단 1번도 없다”고 말했으며 가족동반으로 나들이에 나선 이모(37·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씨는 “현충탑이 아니냐”고 말해 초전기념비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17년간 초전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화자(46·여)씨는 “10여년 전부터 눈에 띄게 찾는 사람들이 줄고 있다”며 “요즘에는 봄·가을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념비는 6·25전쟁 발발 직후 10일만인 7월 5일 유엔군이 북한군을 맞아 처음으로 전투를 치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82년 4월 세워졌다.
이 전투를 이끌었던 스미스 중령은 기념비에 “대한민국 국민이 평화를 누리기 위해 계속 치러야 할 대가는 힘과 경계 그리고 헌신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고 적었다.
경기도에는 유엔군 초전기념비를 비롯 프랑스와 노르웨이 등 당시 6·25전쟁에 참전한 외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참전비와 전쟁기념비가 75개나 세워져 있다. 그러나 제대로 관리되고 기억되는곳은 없다는것이 참전용사들의 한탄이다.
경기도 재향군인회 차동균 안보부장은 “유엔군 초전기념비 뿐만 아니라 모든 곳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며 “남북화해 시대를 맞아 전쟁기념비가 역사교육장으로 재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군초전기념비 르포
입력 2001-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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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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