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어민 표정
8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서 꽃게조업을 마치고 막 귀항한 한 어민이 "섬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매번 당하고만 있는 상황에 복장이 터질 지경"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연평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NLL 교묘히 넘나드는 검은색 배
'저인망 쌍끌이' 밑바닥까지 훑어
꽃게 싹쓸이 모자라 서식지 파괴
"北 포격도 버텼는데… 못 살겠다"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인데, 우리 연평도 주민들은 왜 맨날 당해야만 하는 겁니까."

8일 오전 11시께 인천 옹진군 연평도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NLL(북방한계선) 북쪽 해상에는 검은색 목선 20여 척이 떠 있었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배에는 빨간색 중국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노란색 어획물 운반 상자를 옮기는 선원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두 척의 배가 그물을 걸고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인망 쌍끌이' 어선이다. 촘촘한 그물로 밑바닥까지 훑어버리는 터라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방식이다. 전망대 건너편 바다를 경계하고 있는 군부대 초소가 보였지만, 아직 우리 영해를 침범하지는 않았는지 '강 건너 불구경'이다. 이들 배는 NLL를 교묘히 넘나들며 불법 조업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관광객 이순자(66·여) 씨는 "이렇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사실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뉴스로만 접한 어민들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3일 전 참다못한 연평도 어민에 의해 중국어선 2척이 나포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중국어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법으로 조업했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연평도 해역에 출몰한 중국어선들은 모두 156척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하나같이 "섬을 떠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매번 당하고만 있는 상황에 복장이 터질 지경이라고 한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꽃게뿐만이 아니다.

저인망 쌍끌이 배가 한 번 왔다 가면 어장 서식지가 파괴돼 해초나 저서생물이 제대로 번식을 하지 못하고, 이를 먹이로 삼는 다른 어종이 줄어든다는 것이 어민들의 설명이다.

어민 김영식(66) 씨는 "지금 갯바위에서 낚시할 때 줄을 50m만 던져도 중국 어선 통발이 걸려들어 오고 있다"며 "돈 들여서 바다에 치어를 방류하면 뭐하나. 어차피 중국 놈들이 다 쓸어버리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북한포격 때도 섬을 지키고 살았는데, 이제는 진짜 섬에서 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연평도 어민들은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박태원 연평도 어촌계장은 "더 이상 중국 배들이 우리 어장을 안방 드나들듯이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며 "중국 배가 NLL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인공어초를 박고 해경에게 단속 전권을 위임해 강력한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민들에게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평도/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