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의 명(明)
英 생산기지 토요타·닛산과 달리
체코 현대기아차 '관세율 반사이익'
일본업체들 가격인상 압박 거세져
반도체·전자부품 등 '경쟁력 UP'
유럽산 명품값 ↓ 여행 '환율이득'
◈브렉시트의 암(暗)
유럽 실물경기 위축 무역비용 상승
17개월째 마이너스 한국수출 '악재'
은행권 13조 기업 수백억~수천억씩
올 해외사채 잇단 만기 도래 '비상'
금리인상등에 차환·발행 차질 우려
반면 브렉시트에 따른 일본 엔화가치 급등으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자동차·철강 등 일부 수출품목의 경우 국내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교차되고 있다. ┃편집자 주·그래픽 참조
■브렉시트 명(明)
전세계 경제에 전반적으로 큰 충격을 주고 있는 브렉시트가 일부 시장에서는 오히려 우리 수출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상승함에 따라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품목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이며 영국 등 EU 시장에서는 일부 품목이 관세율 변화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 엔화가치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엔 환율이 1% 하락하면 우리의 글로벌 수출 물량은 0.49%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대로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물량은 늘어난다.
엔고 현상의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는 자동차 산업이 꼽힌다. 엔고로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타격을 입게 되면 북미 등 주요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기아차 등 한국 업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단기간의 엔고 영향으로 일본업체들이 글로벌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즉각 올리지는 않겠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 가격 인상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
동남아 등 해외에서 일본 업체와 경쟁하고 있는 철강업계 역시 최근 엔고 현상이 단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업계도 반도체나 장비 등 부품 부문에서 엔고 현상으로 일본 업체들이 일정 부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등 유럽시장에서도 일부 품목에서는 우리 수출업체에 유리한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영국은 앞으로 2년간 EU와 탈퇴협상을 진행할 예정인데 이 기간에 양측이 별도의 무역협정을 마련하지 못하면 2년 뒤 새로운 관세장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토요타, 닛산 등 영국에 생산기지를 둔 일본차는 다른 유럽 국가에 수출할 때 관세를 부담해야 해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생산기지가 있는 현대기아차는 영국 외 다른 유럽 국가에서 일본차의 가격이 높아지면서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특히 EU 역내 국가 중 영국과 교역이 활발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경우 영국과의 교역에서 관세장벽이 생기면 우리 수출기업에는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가 EU보다 먼저 영국과 현재 수준의 무역협정을 마련하게 되면 자동차, 터보엔진 부품 등을 영국에 수출하는데 유리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영국 시장에서 독일, 프랑스 등과 이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한편 국내 유통업계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향후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떨어져 유럽산 명품 가격도 인하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의 여파로 영국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계속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유럽산 수입 제품의 국내 판매가 역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밖에 유럽행 여행 수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환율이 낮아지면 파운드화나 유로화로 표시된 호텔 요금, 교통비, 식비 등이 상대적으로 싸져 유럽을 가려는 여행객들에게는 이득이다.
여행사 관계자는 "개별 여행객들에게는 환율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번 여름 휴가를 유럽으로 떠나려고 하는 개별 여행객의 경우 항공권, 호텔, 유레일 패스 등을 예약하려면 지금이 적기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브렉시트 암(暗)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지난해 이후 한국경제 부진의 단초를 제공했던 수출은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당장 대 영국·EU 수출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브렉시트 여파로 영국과 EU 지역 실물경기가 위축되면 대외교역 자체가 줄어들고 이는 우리 경제의 수출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향후 15년간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7.5% 감소할 것으로 자체 추산했다.
독일의 LFO 경제연구소는 영국이 EU를 이탈할 경우 독일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3%가량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전 세계 무역비용이 상승하면서 국가 간 투자가 축소될 것으로 진단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브렉시트의 경제적 영향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기적으로 영국과의 교역에서 관세체계와 세관 행정의 부재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며 "이는 한국과 영국, 한국과 EU 간 무역관계가 위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액은 256억5천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 줄었다. 수출액은 지난해 1월부터 1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 중이다. 월간 수출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지난 1970년 이후 최장기간이다.
여기에 브렉시트로 인한 교역량 위축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수출은 언제 회복될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온 우리나라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시장에선 이번 브렉시트로 회사채 발행금리가 높아지거나 발행 자체가 막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포스코·LG전자·두산인프라코어·이마트 등 대기업들과 국책·시중은행들의 해외사채 만기가 줄줄이 돌아온다. 이들 기업은 올해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해외 사채를 차환하거나 상환해야 한다.
시장 관계자들은 그러나 브렉시트로 급등한 달러와 엔화로 사채를 발행한 기업들은 차환발행 시 조달금리가 높아져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현금 유동성이 풍부하지 않은 기업들이 앞으로 해외사채를 차환할 때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금리를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해외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발행한 사채에 대한 투자수요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확산하면서, 신흥국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회사채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며 "해외에서 기업의 사채발행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사채를 발행한 은행들의 우려도 크다. 연내 은행권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사채 규모는 13조원이 넘는다.
은행별로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사채는 수출입은행(4조5천364억원), 산업은행(3조4천749억원), 하나은행(2조3천480억원), 신한은행(1조2천억원), 기업은행(1조원), 국민은행(9천362억원) 등이다.
은행들은 대부분 만기도래 해외사채를 차환할 계획인데, 전문가들은 미국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서고 국내에서 달러가 이탈하면 은행들의 해외채권 상환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도 안전자산 선호로 우량채 위주로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 신용도가 우수하지 않은 기업들과 은행들은 자금조달에 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성철·신선미기자 ssunm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