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병을 폭행·협박한 군인이 최전방 소초(GP) 경계근무 중 범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적과 긴박하게 대치한 '적전(敵前)' 상태에서 벌어진 범죄로 간주해 가중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5부(윤준 부장판사)는 예비역 병장 김모(23)씨의 항소심에서 당초 기소된 혐의(적전초병특수폭행 등) 대신 초병특수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1심을 유지했다고 3일 밝혔다.

이에 따라 김씨에게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이 선고됐다.

김씨는 작년 3∼4월 2차례에 걸쳐 강원 양구군에 있는 모 육군부대 GP에서 경계근무 중 방탄조끼를 입고 있는 후임병 A씨의 배를 대검으로 찌르거나 목에 대검을 들이댄 혐의로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A씨의 오른쪽 얼굴 또는 배에 갖다댄 채 '총을 장전했다. 죽여버린다'고 말한 혐의도 받았다.

김씨는 같은 해 3∼5월 경계근무 중 4차례 A씨와 또다른 후임병 B씨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수화기 선으로 목을 조르는 등 폭행하기도 했다.

검찰이 적용한 혐의는 총 3가지다. 각각 총과 대검을 이용해 때린 점은 적전초병특수폭행, 실탄을 장전하고 협박한 부분은 적전초병특수협박, 주먹으로 때린 행동은 적전초병폭행이다.

군형법은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특수폭행과 협박, 폭행을 '적전'(敵前)인 경우와 그 밖의 경우로 나눠 처벌한다.

'적전'은 적을 공격·방어하는 전투행동을 개시하기 전후의 상태 또는 적과 직접 대치해 습격을 경계하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에는 더 무거운 형벌로 처벌받는다.

일반적인 초병특수폭행의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하는 반면 '적전'에서 벌어진 폭행(적전초병특수폭행)은 사형,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엄중 처벌한다.

검찰은 GP가 군형법이 규정한 '적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GP는 소대급 기준으로 증·감편된 병력이 비무장지대(DMZ) 최전방에 투입돼 북한군과 대치 상태로 경계작전을 하는 초소다.

그러나 1심은 "최첨단 전투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해 종전과 달리 적과 대치하는 거리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며 "객관적 기준 없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적전'으로 구분하면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개연성이 인정되는 적의 습격을 전제로 하는 상황으로 '적전'을 한정해야 한다"며 GP 근무 자체는 '적전' 상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항소심도 "최전방 경계초소에서 경계근무 중 후임병들을 폭행하거나 총기로 협박해 죄질이 좋지 않고,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적전' 상황에 대해선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모두 김씨가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고, 김씨도 잘못을 깊이 뉘우치는 점을 고려했다"고 집행유예 이유를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