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회사원 양모(43)씨는 여름휴가를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이다.

지난해 무심코 가족과 동해안 피서지로 떠났다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 행렬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5시간 넘게 핸들을 잡아야 했다.

차 안에서 장시간 괴로워하던 자녀들 얼굴을 떠올리면 자연히 행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양씨는 "아이들 방학과 회사 일정을 생각하면 휴가를 길이 덜 막히는 비수기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면서 "휴가 성수기에는 이른 아침이나 밤에도 피할 수 없는 고속도로 정체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민 상당수는 매년 여름휴가마다 양씨와 비슷한 '악몽'을 경험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인천 남동을)이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제출받은 '고속도로 혼잡 현황'은 이런 하소연이 결코 엄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여름휴가 성수기인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5일(120시간) 동안 국내 최악의 고속도로 정체구간으로 기록된 서해안선 일직분기점∼금천 구간은 무려 69시간이나 시속 40㎞ 이하 거북이 운행을 했다.

심야와 새벽 몇 시간을 빼곤 종일 정체로 몸살을 앓은 셈이다.

지난해 휴가기간 고속도로 혼잡구간 상위 10위 중에는 서해안선 일직분기점∼금천 상·하행선과 비봉∼매송 구간 이외에 영동선이 무려 7개 구간이나 이름을 올렸다.

영동선 진부∼속사, 군포∼둔대분기점. 동군포∼군포 상·하행선, 만종분기점∼원주, 둔대분기점∼안산분기점, 신갈분기점∼동수원은 5일 동안 11∼33시간이 시속 40㎞ 이하였다.

통행량 증가로 제구실을 못 하는 고속도로는 휴가철 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3년 5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전국 고속도로의 주말 월평균 속도를 분석한 결과 서해안선 일직분기점∼금천 구간은 월 107시간이 정체됐다.

서해안선 송악∼서평택분기점(55시간/월), 서울외곽선 장수∼송내(50시간/월), 영동선 여주∼호법분기점(39시간/월), 경부선 대왕판교∼양재(38시간/월) 구간 등도 대표적인 '느림보' 구간으로 악명을 떨쳤다.

고속도로의 기능이 사실상 사라진 구간에 대한 운전자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속도로 정체가 일상적으로 되풀이되면 이용자의 시간·비용적 손실은 물론 피로도 증가와 졸음운전으로 안전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윤관석 의원은 5일 "고속도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따로 통행료를 지불하며 이용하는 도로인데 현재 상습적인 정체로 제 기능을 상실한 구간에 대해선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의 근거가 되는 '유료도로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윤 의원의 설명이다.

유료도로법에 '여름휴가기간, 명절, 공휴일 등 교통수요가 급증하는 날 중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에는 통행하는 모든 차량에 대해 통행료를 감면 또는 면제한다'는 조항을 신설하자는 주장이다.

윤 의원은 "최근 국회와 시민사회에서 명절 기간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자는 논의도 진행되고 있다"면서 "여름휴가기간 등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고속도로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기간에는 통행료를 면제 또는 할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