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겐 일제 잔재가 손에 박힌 가시와 같아
그 가시는 '恨의 또다른 이름'… 언제 뽑을 수 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의 위트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희화화를 통해 창씨개명에 얽혀있는 부조리를 표현했다고 할까. 창씨개명에 얽힌 이 비화(?)는 지금도 쓴웃음을 남긴다.
일본식 성명 강요를 의미하는 창씨개명은 한마디로 민족성 말살 정책이다. 성명, 즉 성과 이름은 조상과 부모가 후손(자식)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그러한 고귀한 가치를 일제는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정책을 앞세워 말살하려 했다. 창씨개명을 거부한 수많은 조선인은 고향을 떠나 만주 등지를 전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창씨개명이란 말에는 민족의 한(恨)이 서려 있다.
이처럼 창씨개명은 우리 역사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남긴 일제의 잔재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일제의 잔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인천시가 '2015 세계 책의 수도'를 기념해 발간한 시선집(詩選集), '문학산'에 수록된 한편의 시가 발원지인데 친일논란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시 전문이 공개된 터이니 쟁점이 됐던 주요 대목만 인용해 본다.
"어느 날 오후/우리 담임 선생님이 /창씨개명을 설명하시며 /선생님도 이름을 바꾸셨다고 /칠판에 靑松波氏(아오 마쓰나미요)라고 쓰셨다/집에 돌아가 우리 선생님이 창시개명해서/ 靑松波氏 선생님이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도 당장 말씀 하셨다 /아 이름 한번 예쁘구나/ 너희 선생님은 詩人이시구나/ 종이에다 붓으로 먹물을 찍어/ 靑松波氏 라고 쓰며 계속 감탄하셨다"
이 시에 대해 상당수 문학 전문가들은 창씨개명을 미화한 친일시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기자 또한 처음에는 '문학산'이 아니라, 친일잡지에 수록된 시가 아닌가 했다. 고교생조차도 이 시를 수록한 공공기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반면 일각에서는 "작가가 유년 시절을 회상한 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들여다봐도 영 개운치가 않다.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행간의 의미를 읽으려 해도 시에 등장하는 선생님에 대한 호감을 시인과 공유하기 힘들다. 오히려 반사적으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나오는 아멜 선생이 떠오른다. 피점령국의 교단에 선 것은 동일한데, 한 선생은 칠판에 '靑松波氏'라고 썼고, 한 선생은 모국어를 예찬하며 '프랑스 만세'라고 썼다.
한국인에게 일제의 잔재는 손에 박힌 가시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다가 이따금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번 친일 논란으로 가시의 존재가 다시 확인됐다. 그 가시는 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언제쯤 가시를 뽑을 수 있을까.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