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근
장성근 경기중앙변호사회회장
1990년대 초반 작은 체구에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단발머리 여성판사가 수원지방법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변호사의 판사실 출입이 자유로웠고 언제든지 놀러 와서 세상돌아가는 얘기를 해 달라 했기에 부담없이 찾아갔던 그분이라 김영란법에 관심을 놓아 버릴 수 없었다.

얼굴은 잘 모르더라도 이름만은 전국에 잘 알려진 김영란. 이 법률의 정확한 명칭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임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기억해 두자. 그리고 주요 내용이 계속 보도되고 있지만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국회를 통과하고 대통령이 공포한 이 법률의 원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한번이라도 읽어보자.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일을 하거나 청렴해야 할 신분에 있는 사람이 거액의 금품이나 선물을 받은 행위가 적발되면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하지만 뇌물죄로 형사처벌하기 위해서는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듯한 구실만 잘 만들어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상황을 연출하면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스폰서 검사사건', '벤츠 여검사사건' 등 세상을 들끓게 했지만 결국 무죄판결을 받은 이 사건들은 언론으로부터 "두 사건 모두 검사에 대해 금전·향응 등의 불법적 상납이 있었으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법원판결과 국민의 상식 사이에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일정 금액이상의 이익을 제공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자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오랜 제안이 각광을 받고 국민의 여론이 비등해지자 국회에서 이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률이 공포되자마자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었으니 이 내용에 대해 무효로 해 달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었고 전 국민의 관심 속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졌다.

나는 이번 결정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탁월하고도 지혜로운 선택이라 생각한다. 세월호 교훈 삼아 안전에 대한 국가·국민의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화되길 기대하듯 이번 김영란법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세상이 되길 염원하며 시행초기에 엄격하고도 철저한 적용을 주문한다.

평소 비용을 들여 관계 공무원을 접대하거나 교분을 맺는데 소요되는 검은 돈이 사라지게 되고 회사의 회계를 조작하여 비자금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나 불법행위의 유혹에서 자유로워진다. 공정경쟁을 해치는 돈과 인맥에 의한 새치기, 편법, 월권행위도 사라질 수 있다. 줄서기나 라인을 탄다라는 표현까지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도로에서 모든 차량이 차선을 지키면 흐름이 빨라지듯 합리성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면 모든 분야의 거품이 빠지게 된다. 소비자 물가의 거품에서부터 인간관계의 거품에 이르기까지 좀 더 성숙한 선진사회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영국이나 싱가포르 예를 들지 않더라도 공직자 등에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앞으로 과제는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이들이 품위를 유지하는데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신분을 보장해 주며 생활의 안정도 확보해 주는 일이다.

김영란법을 통한 우리 사회시스템의 합리화,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원칙의 정착, 검은 돈이 사라지고 성실한 사람이 이기게 되는 이상사회 실현에 한 걸음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 잠깐의 불편함이나 손실은 우리 모두 감수해야 한다. 우리 자녀 세대에게 자랑스런 유산으로 남는 김영란법이 되길 소망한다.

/장성근 경기중앙변호사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