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첫 정기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빚어진 파행 상태가 28시간 만인 2일 오후에 극적으로 수습됐다.

사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에 새누리당이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야당 출신의 의회 권력 수장과 집권 여당이 정면으로 충돌한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결과물이었다.

정 의장이 전날 오후 2시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거취 문제를 건드리자 새누리당은 즉각 들고 일어섰다.

가뜩이나 야당 소속 상임위원장들의 회의 진행이 편파적이라며 불만을 품어 온 새누리당은 정기국회 개회 기념촬영도 거부한 채 곧바로 의원총회를 소집, 정 의장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며 밤늦게 의장실을 항의 방문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위기감은 이날 더 고조됐다. 새누리당은 이틀째 의총을 열어 '강경 투쟁'을 다짐했다.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와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등 모든 의사일정에 불참한 채 30∼40명의 의원이 번갈아가며 의장실 앞에서 연좌 농성을 벌였다.

특히 새누리당 일부 강경파는 정 의장이 본청 집무실을 비운 채 계속 사과를 거부할 경우 한남동 의장공관을 점거하자는 주장도 폈다. 전날 의총에서 추인된 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도 이날 공식 제출했다.

전날 "어떤 정치적 의도 없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현안에 대한 입장을 사심 없이 얘기했다"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던 정 의장은 이날 "국민께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는 선에서 매듭을 짓자고 새누리당에 제안했으나, 새누리당은 "추경 처리 지연까지 불사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자칫 국회의 장기 파행으로 이어질 뻔한 일촉즉발의 국면은 오후 들어 반전했다.

강경 일변도로 정 의장을 압박한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물밑에서 정 의장과 접촉, 국민의당 소속 박주선 부의장 사회로 본회의를 여는 데 합의한 것이다. 자신의 개회사에 대한 사과 요구를 거부하는 정 의장과, 정 의장의 회의 진행을 따를 수 없다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추석 전 자금 집행'을 위해 추경안 처리를 언제까지나 미뤄둘 수는 없는 새누리당의 입장, 일반 의원도 아닌 국회의장의 발언을 이유로 입법부가 공전하는 데 대한 정 의장의 부담이 국면 전환의 배경으로 꼽힌다.

양측이 돌파구를 모색하는 데는 현역 최다선인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과 광주 저녁 일정도 취소하고 국회에 남은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막후 중재 노력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은 정 원내대표의 부탁으로 이날 오후 정 의장을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 의장과 정 원내대표의 사이에서 우윤근 사무총장이 박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도록 정 의장을 설득하는 등 양측의 가교 구실을 톡톡히 했다는 후문이다. 19대 국회에서 정 원내대표는 국회 사무총장을, 우 사무총장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정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국회 정상화의 '수훈갑'을 꼽자면 단연 우 사무총장"이라며 "정말 애를 많이 써 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전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를 포함한 여야 3당 원내대표는 결국 이날 오후 6시에 회동,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어 정 의장은 "개회사에 대한 새누리당 의원들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취지의 입장을 발표했다.

오후 6시30분에 마침내 추경안 등을 처리하기 위한 정기국회 첫 본회의가 열렸다. 정 의장의 개회사 직후 열릴 예정이던 본회의가 28시간이 지나서야 열린 것이다. 추경안 등 본회의에 오른 21개 안건은 국회가 언제 파행했느냐는 듯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