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책 표지만 바꿔 자신의 저서인 것처럼 출간하거나 이를 묵인한 이른바 '표지갈이' 사건으로 기소된 대학교수들에 대한 항소심에서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원심은 저작권법 보호 대상을 최초 발행된 책만으로 한정했으나 했으나 항소심은 달리 봤다.

의정부지법 형사1부(성지호 부장판사)는 저작권법 위반, 업무방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모(60) 교수 등 5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했다고 9일 밝혔다.

원심은 이들의 혐의 가운데 저작권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현행 저작권법은 남의 저작물에 이름을 바꿔 '공표'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이에 원심은 '공표'를 최초 발행의 의미로 해석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작물 보호 기간이 무한히 연장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원심은 저작권법이 '발행' 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공표' 행위를 처벌하려고 제정됐다고 판단했다.

이번 표지갈이 교수들의 경우, 이미 공표된 책에서 일부 오·탈자만 수정했을 뿐 내용은 바꾸지 않고 자신들의 이름만 넣어 다시 발행한 것이지 공표한 것이 아니므로 저작권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이었다.

아직 발행되지 않은 저작물을 가로채 저자 이름만 바꿔 공표하거나 이미 발행된 책이라도 내용을 일부 수정한 뒤 자신의 이름을 넣어 새로운 책 형태로 '공표'해야 처벌 대상이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항소심은 저작권법 적용 범위를 공표로 한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현행 저작권법은 공표가 발행을 포함하는 개념임을 분명히 하고 있을 뿐 (적용 범위를) 최초 발행 즉 공표에 한정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이어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유형이 다양해져 부정한 발행을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저작자 이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보호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부정한 발행을 비롯한 부정한 공표 행위 일체를 처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최고의 지성인이자 교육자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대학교수의 지위에 있음에도 부정한 사익을 추구하려는 탐욕에 빠져 자신이 쓰지도 않은 책을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공저자로 표시해 엄벌해야 마땅하지만 동일한 유형의 사건과 형평성을 고려해 벌금형을 선택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앞선 원심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발행된 책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저자 이름만 바꿔 발행하더라도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한번 공연된 연극을 다른 극단이 그대로 공연해도 저작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이에 검사는 원심 재판부 판단에 법리오해가 있었다며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