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억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로 강도 높은 검찰 조사를 받은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계열사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검찰에 따르면 신 회장은 전날 오전부터 이날 새벽까지 이어진 조사에서 사실관계는 대체로 시인하면서도, 일부에 대해서는 지시하고 보고를 받거나 관여하지 않았고 범의(범죄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는 롯데건설의 수백억대 비자금 조성 의혹은 모른다고 주장했으며, 롯데케미칼의 '소송 사기' 의혹도 소송 자체는 알았으나 불법 여부는 알지 못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을 포함해 오너가(家)의 급여 부당 수령 의혹에는 "다소 간의 역할은 있지 않았겠느냐"라는 취지로 진술해 범죄 성립이나 가벌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의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의 피의자 신문은 이날 자정께 마무리됐으나 신 회장이 조서를 4시간가량 꼼꼼히 열람하면서 전체 조사는 늦은 새벽에서야 끝났다.

신 회장이 진술을 위해 한국어를 구사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으나 독해에 다소 어려움을 겪어 조서 열람 때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롯데 비리 수사의 '정점'으로 꼽히는 신 회장 조사를 마친 검찰은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포함해 총수일가의 신병 처리를 신중히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 범죄에서 가족 범죄일 경우 부자간, 형제간 등 이런 걸 많이 고려하는데, 이번 사건은 약간 특수성이 있다"며 "누구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렇게 해서) 어느 한쪽은 용서를 받기가 어려운 구조 같다. 별개의 범죄사실이라는 점이 고민 요소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는 신 회장의 부친 신격호(94) 총괄회장, 형인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일가를 모두 기소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당사자마다 독립적인 성격의 범죄가 각각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이번 수사가 경영권 분쟁 중인 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지배구조가 달라지는 게 있는가, 지금도 똑같은 지배구조 아래의 신동빈 체제"라며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지배구조라면 다른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형제의 난으로 촉발된 경영권 분쟁 아니냐. 형제가 화합하면 경영권 향배 문제는 생기지 않을 텐데 꼭 수사 때문에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처럼 만드느냐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또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간다고 문제 삼을 것이냐, 언제까지 그 이유로 면책이나 선처를 해달라고 얘기할 것이냐는 답답한 생각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통상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고려하는 '사안의 중대성' 가운데 하나의 요소 정도로는 고려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수사 외부적인 문제이며 경영권 향배 자체가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라는 원칙을 새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경솔하게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 같다"면서 "수사팀 내부에서 토론하고, 대검과도 협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