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전 "민생 최우선" 하더니 당쟁에 바쁜 국회의원
심각한 '내우외환'… 정쟁이 판치면 죽는건 국민뿐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데 이어 해운업계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무비자로 관광수익을 올리겠다던 제주도는 외국 관광객들의 무분별한 횡포와 폭력이 난무하고 최근엔 중국 관광객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는 참혹한 일도 벌어졌다. 경주 일대는 지진으로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사이 평균 연봉 8천800만원을 받는다는 금융계 파업에 이어 노동귀족이라 불리는 자동차, 철도업계도 파업을 예고했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폭탄 요금제'로 경로당 어르신들은 에어컨 한번 제대로 켜지 못하고 지냈지만, 한전은 임원들에게 평균 2천만원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친절하게도 성과급 지급은 정부 지침에 따른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6천470원 최저 시급 우수리를 떨어내도 그나마 어렵게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다 보니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겐 성과급 2천만원은 꿈만 같은 얘기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청년이 잠깐 졸았다는 이유로 사장에게 얻어터지고 땅에 묻어버리겠다는 협박을 받는 세상이다. SNS에는 사는 게 힘들다고 어린 학생들까지 가세해 함께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북한 외무상이 UN에서 핵무장은 정당한 방위적 조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도 대선에 눈이 먼 '잠룡(潛龍)'들은 북핵보다 반기문 총장 견제에 열중하고 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서 주목받는 후보로 나서려면 경쟁자인 반 총장을 깎아내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입맛이 씁쓸하다. 올 초 서해 앞바다에는 중국 어선이 떼로 몰려와 어자원을 싹 쓸어가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더니 요 며칠 서해5도서 NLL 인근 해상에 중국 불법조업 어선이 눈에 띄지 않자 혹시나 북한이 포격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마저 나오고 있다. 뭔가 조용해도 불안한 시대가 됐다.
불과 넉 달 전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머리를 조아리던 국회의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쟁(黨爭)에 바쁘신 몸들이 됐다. 농림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날치기(여당 주장) 통과시킨 야당에 불만인 여당은 국정감사 등 정치 일정에 불참하겠다고 애들처럼(야당 주장) 투덜대고 있다. 이 바람에 시급한 민생 현안은 늘 그랬듯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언제 우리 사는 것 제대로 챙겼냐. 바꾸긴 뭘 바꿔. 지들 자리나 바꿔야지. 당선되면 무서운 게 없는 거야.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점심 시간 식당 옆자리에서 뉴스를 보던 한 어르신이 일행들에게 던진 말이다.
예로부터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 먹고사는 문제를 챙기는 것이라 했다. 맹자는 "민생(民生)의 안정 없이 도덕과 윤리를 강조한다면 백성이 쉽게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자도 정치에서 중요한 세 가지 중 첫째는 먹는 것(경제), 둘째는 자위력(군대), 셋째는 백성의 신뢰라고 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고 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즉 백성이 정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존립 기반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틀 후면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때를 맞추기나 한 듯이 법 시행을 앞두고 법조계에선 판·검사 비리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스폰서'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거기엔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처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쟁(政爭)이 판을 치면 죽어 나가는 건 국민뿐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한다. 먼저 내 배가 불러야 남도 도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아직 나라님들의 곳간은 다 안 찼나 보다. 민생 챙길 생각 안 하는 것 보면.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