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년배 여성을 성폭행하고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7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황혼 로맨스'였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중형을 선고받았다.

2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이모(72)씨는 6년 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A(74ㆍ여)씨를 알게 됐다. 나이도 거의 같아 3년 전부터는 서로 안마도 해주는 등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올해 초 A씨가 "집에 남자 모자가 있는데 당신에게 주겠다"며 이씨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이씨가 갑자기 돌변했다. "오늘은 성관계하려 나를 집으로 들인 거 아니냐"며 A씨를 성폭행했다.

A씨는 손톱으로 이씨의 목과 얼굴을 할퀴는 등 저항했다. 이씨는 얼굴에 상처를 입은데 격분했고, 침대에 앉은 A씨를 세게 밀쳤다. A씨는 그대로 떨어지며 바닥에 머리 뒷부분을 부딪쳤고, 평소 앓던 심장질환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그대로 숨졌다.

이씨는 수차례 경찰 조사와 세 차례의 검찰 피의자신문에서 이러한 내용을 일관되게 진술했다. 검찰은 이씨를 강간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정에서 이씨는 말을 바꿨다. A씨와는 연인 관계로 강간이 아닌 화간이며, A씨를 침대에서 밀기는 했지만, 사망과는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동안 혐의를 인정한 것은 수사관이 강압적으로 소리를 쳐 겁에 질린 상태에서 잘못 진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청각장애 3급이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자신에게 검찰이 법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절차를 설명하지 않아, 이 진술은 증거가 될 수 없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반정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이씨와 그의 변호인은 이러한 내용을 배심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배심원 9명은 만장일치로 이씨를 유죄로 판단했다. 양형 의견은 징역 10년 3명, 징역 7년 4명, 징역 5년 2명이었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존중해 이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고, 8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평소 이씨 이웃의 증언으로 보면 이씨의 청각장애는 10년 전 생긴 후천적인 장애로 언어장애가 없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태"라며 "검찰이 장애인인 이씨가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씨의 장애가 방어권에 불이익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씨의 수사기관 진술과 A씨의 손톱에 남은 이씨의 혈흔 등을 토대로 화간이 아닌 강간이 맞다고 봤다. 강간으로 받은 충격으로 심장질환이 악화해 사망했다는 부검의의 의견에 따라 범행과 사망의 인과관계도 인정했다.

이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