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차 진안리 농수로
LH 택지 개발 펜스 세워져
6차, 레미콘공장은 그대로
나머지 피해 장소 완전 변모
"외지인 유입 당시 잘몰라"
1991년 4월 마지막 희생자 권모(69)씨 등 10명의 부녀자들이 무참하게 살해될 때까지 5년 이상 화성을 포함한 경기남부지역은 연쇄살인 공포에 떨어야 했다.
과학수사 개념조차 없던 시절, 주먹구구식 수사로 경찰의 오점으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당시 경찰수사의 문제점을 되새기며 현재 과학수사 현주소도 살펴 본다. ┃편집자 주·표 참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는 택지개발로 옛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1차 피해자(3개월 이후 2차 피해자로 분류) 박씨가 발견됐던 농수로는 그대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1차 사건 현장인 진안리 농수로 바로 옆엔 택지개발을 위한 펜스가 쳐져 있고 LH가 곧 개발에 나서게 되면 영원히 기억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6차 피해자 박모(29)씨가 발견된 진안리의 한 야산 역시 많은 시간이 흐른 탓에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모습은 많이 지워져 있었다. 아직도 인적이 뜸한 야산 너머로 박씨가 남편을 마중 나가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진 레미콘 공장이 옛 이야기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1987년 1월부터 화성연쇄살인사건의 1차 희생자로 분류된 이모(71)씨와 1986년 12월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 3차 희생자 권모(25)씨가 각각 발견된 안녕리의 목초지와 공사장 축대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 태안읍 황계리 논,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태안읍 병점리 야산, 동탄면 반송리 야산 등 나머지 희생자들이 발견된 장소도 30년 전 살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사건을 보도했던 신문에서 사건을 일일이 찾는 것보다 사건기록에 나와 있는 옛날 주소로 범행현장을 찾는다는 것이 훨씬 더 힘든 일과가 되기도 했다. 30년전 신문을 일일이 스크랩하면서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화성이 아닌 수원에서 범죄가 발생해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분류하지 않은 사건 또한 연쇄살인사건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이 발생한 수원시 화서동 논마저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장 인근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렵사리 수소문해 찾아간 진안동 노인정의 어르신들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해 묻는 것조차 꺼리는 눈치였다.
진안동의 한 주민(75)은 "벌써 30년이 지났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며 "몇 명 안 남은 노인들 빼고는 이곳 주민 대부분은 외지에서 왔거나 사건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당시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취재기자에게 "당시 연쇄살인사건으로 빨간색 옷을 입지 말라. 해가 지면 부녀자들은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였다"며 "벌써 몇 십년이 지난 좋지 않은 옛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느냐"고 말하면서 언짢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범수기자 fait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