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사법위원회와 정무위원회를 제외한 11개 일반 상임위원회가 14일 종합감사를 하면서 '정기국회의 꽃'으로 불리는 올해 국감은 사실상 끝났다.
성적표는 참담하다. 시민단체 모임인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이 매긴 이번 국감의 학점은 'F'다. 모니터단이 활동을 시작한 15대 국회 말 이래 18년 만에 준 최악의 점수다.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19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 학점(D)보다 낮다.
굳이 시민단체의 학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번 국감이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이었다는 지적에는 국감에 참여했던 의원들조차 대다수가 동의한다.
국감은 출발부터 삐걱댔다. 국감 개시 직전 터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로 새누리당이 국감 참여를 거부하면서 첫 일주일을 허비했다. 여야는 이를 반영해 국감을 오는 19일까지로 나흘 연장했다. 그러나 이날 국감이 대부분 종료되면서 '지각'해놓고 '조퇴'까지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간신히 정상화한 국감장에선 정쟁만 난무했다. 정권 수뇌부를 겨냥한 의혹 공세에 열을 올린 야당과, 이를 덮어놓고 방어하는 데 급급한 여당이 빚은 '합작품'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국감장에서 힘겨루기만 한 셈이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경우 지난 6∼7일 16개 시·도교육청에 대한 국감을 열었으나, 일선 교육현장의 문제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대신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둘러싼 일반증인 채택 공방에 시간을 보냈다. 국감을 위한 증인채택이 국감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교문위 국감은 이튿날 새벽 1∼2시에 끝나기 일쑤였지만, 소득은 여야의 감정싸움뿐이었다. '주파야감(晝跛夜監·낮에 파행하고 밤에 감사한다)'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결국 교문위는 이번 국감에서 일반증인을 한 명도 채택하지 못했다.
국감 때마다 정쟁에 따라붙는 꼴불견 행태, 무책임한 허위폭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국감 스타'는 실종된 지 오래다.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은 전날 교문위 국감에서 자신의 발언에 야당 의원들이 웃자 여성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을 향해 "내가 그렇게 좋아"라고 했다가 유 의원의 항의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주워담았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4일 법사위 국감에서 "청와대 '문고리 권력 3인방'의 한 명인 이재만 총무비서관이 국가정보원에 지시해 박근혜 대통령 사저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청와대는 곧바로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하며 일단락됐다.
더민주 어기구 의원은 지난달 29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감에서 "최동규 특허청장의 아들이 LIG 넥스원에 특혜 채용됐다"고 폭로했지만 동명이인으로 밝혀지면서 "착오를 드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좌중을 아연실색하게 한 증인들의 황당한 태도도 올해 어김없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기동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지난달 30일 의원들을 가리켜 "새파랗게 젊은것들에 이런 수모를…"이란 발언으로 집중포화를 맞았고,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지난 12일 "수사 중이라 말할 수 없다"는 답변만 수십 차례 거듭해 빈축을 샀다.
이 밖에 국감이 임박해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를 요구하는 탓에 발생하는 행정부 마비, 부실한 준비로 국감 때마다 자료 제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전, 무분별한 증인채택 등으로 '국감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여야는 여전히 '네 탓'이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감대책회의에서 "이번 국감 역시 민생은 실종되고 대선을 겨냥한 정쟁만 난무했다는 국민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겠다"며 '저질 국감'의 화살을 야당에 돌렸다.
그러나 국민의당 조배숙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새누리당의 청와대 사수 작전에 가로막혀 국감에서 증인채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맹탕 국감', '방탄 국감'이 되고 말았다"고 반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