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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종합민원사무소 내에 마련된 부패ㆍ공익침해 신고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청탁금지법 위반 행위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달째에 접어드는 27일 관가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저녁식사 약속이 눈에 띄게 줄어든데다, 각자내기를 하는 점심시간에도 낮은 가격대의 메뉴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었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업체의 의견과 입장을 전달하는 대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식사 자리를 통해 공무원들을 자연스럽게 접촉할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다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 저녁 자리는 1차만…공무원 귀가시간 2시간 앞당겨져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정부서울청사에 근무하는 중앙부처 A 과장의 일상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은 귀가시간이다.

그간 금융업계 동향 파악을 하거나, 애로 사항을 들어보기 위한 저녁 식사 자리가 잦았던 그의 평균 귀가시간은 오후 11∼12시였다.

보통 1차로 삼겹살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2차로 맥주를 마시는 코스를 즐겼던 그였다.

법 시행 이후부터는 저녁 식사만 마치고 9시께 귀가한다. 2차를 하면 식사비용 3만원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각자내기를 하면 식사비용이 3만원이 넘어도 되지만, 법 시행 초기인 만큼 관가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법 적용을 하고 있다.

식사 장소를 정하기 전에 식당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물어보거나 꼼꼼히 검색을 해보는 것도 일상이 됐다.

정부서울청사 인근 한정식집들도 2만9천원대의 일명 '김영란 메뉴'를 속속 내놓고 있다.

A과장은 "법 시행 이후 2주 동안에는 약속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약속을 잡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청탁금지법 적용 범위가 워낙 포괄적이다 보니 논란은 여전하다.

B과장은 "행정고시 동기들과 함께 식사하거나, 다른 부처 직원들과 밥을 먹을 때도 3만원 기준이 적용되는 것인지 등 무엇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매일 같이 화제에 오른다"고 말했다.

내부 직원들끼리 논의를 벌이다가 결국은 하려던 일을 안 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권익위에 문의해도 언제 답변이 올지 몰라 포기하고 만다"며 "정상적인 활동마저 움츠러드는 일이 없도록 법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로 내려온 공무원들도 바뀐 분위기를 전한다.

정부세종청사의 한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국장급 공무원은 "점심식사는 좀 애매한데, 가격 부담이 없는 경우 청탁금지법 영향을 크게 받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저녁자리는 확실히 '각자내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법이 시행된지 한달이 지난 만큼 관가에서도 도입 초반에 비해 긴장하는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부처들은 비슷하다고 한다"면서도 "선임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는 아무래도 이목이 집중돼서 그런지 아직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 기업들 "손발 묶인 느낌"…일부는 '저녁 있는 삶'에 반색도

주요 대기업 대관파트 임직원들은 청탁금지법 시행 한 달을 맞아 '일 추진이 너무 힘겨워졌다', '네트워크를 만들 재간이 없다', '손발이 묶였다'는 등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한편으로는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겼다며 반기는 경우도 있다.

기업의 대관업무란 정부, 국회, 각종 협회·단체 등을 상대로 사업 추진과 관련된 각종 인허가·규제·정책지원 사안 등을 협의하는 업무로, 상당 부분이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우선 신사업을 추진할 탄력을 잃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IT전자업계 대기업 대관파트의 한 담당자는 "신사업을 벌리려면 유관부처와 사전협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식사자리를 통해 담당 공무원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확 줄어드는 바람에 손발이 묶인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예전에는 오전에 부처 사무실에 가서 회의를 하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응당 점심을 함께하며 협의를 연장하곤 했는데 이제는 점심때 딱 걸리면 그냥 관두고 나와야 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관 쪽은 많이 힘들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아예 만나주질 않는다"면서 "업계 특성상 환경규제나 정책 등을 설명하고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 때도 있는데 만남 자체가 단절된다"고 호소했다.

대관 담당자들이 세종시에 내려가는 횟수는 오히려 더 잦아졌다고 한다. 그나마 사무실에선 만날 수 있다고 하니 청사 앞에서 대기하다가 얼굴이라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셈이다.

'스킨십'을 아예 못하게 됐다는 불만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업무와 관련해 배경설명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내밀한 이야기나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애초 그런 자리 자체를 만드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각자내기가 늘면서 애환도 생겼다고 한다.

업무상 만남을 한 뒤 본인이 먹은 비용을 각자 지불한 경우 회사에 비용을 청구하기가 모호해져 울며 겨자 먹기로 사비를 털어야 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연말 예산 계획을 짜고 있는 대기업들은 대관파트 인원과 예산을 줄여야 할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 약속이 줄면서 반색하는 직원도 있다.

한 대기업 대관 담당 직원은 "청탁금지법 이전에는 1주일에 최소 2번, 많으면 4번까지 저녁약속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여서 한주에 한 건도 약속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