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인한 정국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투입된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가 3일 국회 인준관문을 통과할 경우 '책임총리'로서 펼칠 국정 밑그림을 처음 공개했다.
박근혜 정부의 현 정책 기조와 각 세우기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김병준표' 정책을 소신껏 펼치겠다는 구상이어서 국정 운영의 대변화가 예상된다.
외교 안보 사안을 제외하고 '경제·사회 정책' 분야의 전권을 실행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적 수사에 그칠 수 있는 책임총리를 확실하게 구현해 사실상 내치(內治)를 전담하겠다는 게 기본 전제다.
김 내정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총리가 되면 헌법에 규정된 총리로서의 권한을 100% 행사하겠다"며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국회와의 상설 협의기구 또는 협의채널을 만들어 여야 각 당과의 협치를 통해 후속 개각을 진행, 새 내각을 구성하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헌법에 보장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을 실제로 행사하면서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거국내각의 취지까지 살리겠다는 의미다.
아울러 "국정을 통할한다는 헌법 규정을 폭넓게 해석해 경제, 사회 정책 전반에 걸쳐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경제, 사회 정책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이고 이 부분은 제게 맡겨달라고 했다. 대통령도 동의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참여정부의 정책 설계자인 김 내정자는 현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을 여러 차례 공개 비판해온 만큼 앞으로 '내치 대통령'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기존의 국정 운영 틀과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김 내정자는 "대통령과 이야기를 해보니 정책적으로 다른 부분이 많다"면서 "제 생각에 변화가 없다. 제 소신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라며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누리과정, 재정과 부동산 정책 등의 당면 현안이다.
그는 간담회에서 "국정교과서 문제만 해도 교과서 국정화라는 게 합당하고 지속될 수 있는지에 의문"이라면서 "국정교과서뿐 아니라 재정 문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누리과정 정책에 대해선 지난 1월20일 주간동아 칼럼 등을 통해 "지방정부가 떠안게 될 재정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될지 설명도, 상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법이니 따르라고 강압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부동산 등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도 9월20일 이투데이 칼럼에서 "성장률이 떨어질 때면 해왔던 짓, 부동산을 부추겨 성장률을 올리는 짓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 마라. 결국은 지속성장의 발목을 잡을 야비한 일이다"라고 공격한 바 있다.
사드 배치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견을 박 대통령에게 제시할 수 있겠지만, 외교·안보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억지로 관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박 대통령이 최근 열어놓은 정부 주도 개헌 가능성에 대해 김 내정자는 이날 "개헌은 국민과 국회가 주도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은 개인으로서는 옳지 않다고 본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정부는 당초 박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따라 정부 내에 개헌조직을 설치해 국회와 더불어 '투트랙'으로 개헌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었으나, 김 내정자가 취임하면 이런 계획도 상당 부분 수정될 것이 유력하다.
이밖에 김 내정자는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의 수습 대책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가능하고, 필요시 박 대통령의 탈당까지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정치적 현안에서 소신 발언도 마다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 내정자는 "대통령과 총리의 생각이 다르다면 원만한 국정운영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우리 국정은 대통령과 총리이 뜻이 맞다고 해도 어렵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는 협치 구도가 아니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당연히 야권과 같이 앉아서 협치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국정 논의의 테이블을 행정부 안에 가둬놓지 않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다만, 인사청문회 통과와 내각 구성 과정에서 국회의 협조를 얻지 못한다면 이런 구상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냉랭한 야당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