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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최순실 사태'로 인한 정국 혼란을 수습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의장실을 방문해 정세균 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 여야 합의로 추천한 총리에 내각을 통할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고 밝히면서 새로운 총리가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야권은 특히 박 대통령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권한을 이양할지가 불분명하고, 2선 후퇴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면서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선 후퇴'라는 말이 법적 용어가 아니고, 구체적인 함의를 놓고도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해석들이 달라 혼선을 초래하고 있고, 설사 거국중립내각이 출범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권한'을부여받은 총리와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간에 충돌 소지는 곳곳에 널려 있다.

야권쪽에서는 "내치는 물론 외교 안보에 이르는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넘기라"로 요구하고 있고, 청와대는 "임면권조차 넘기라는 것은 대통령이 임명도 하지 말고 총리가 임명까지 하라는 말인데 내각제로 되지 않는 이상 안 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총리는 내치·대통령은 외치?…내·외치 기준은 =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외치, 국무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 형태의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내치와 외치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예컨대 정국의 핵심 현안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우 미국과의 협상 분야는 외치에 해당하지만, 사드 배치 예정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문제는 내치에 해당한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과 협상을 하는 문제는 외교사안이지만, 해양경찰에 대한 지휘는 내치의 영역이다. 해경 조직 역시 국민안전처 소속이다.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 역시 해당 국가와의 협상은 외치에 해당하지만, 농축산업 등 피해 업종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들 업종 종사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은 내치와 직결돼 있다.

◇대통령 2선 후퇴…총리가 국군 통수할 수 있나 = 대통령이 2선으로 후퇴하고 내치와 외치를 모두 총리에게 위임한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가 국군 통수권이다.

헌법 제74조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리에게는 국군 통수권이 없다는 말이다.

특히 북한이 도발을 하는 등 교전이 발생해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는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또 헌법 제91조를 보면 대외·군사 정책을 논의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도 대통령이 주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거국중립내각'이라고 하더라도 총리가 국가의 대표 자격으로 외교일정을 수행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누가 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헌법 제7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총리가 FTA 등 각종 조약을 체결·비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내년 임기 만료…누가 임명하나 =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9월25일까지다.

특히 대법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향후 6년 동안 사법부의 기조가 변할 수 있어 대법원장 임명 문제는 내년 여야가 충돌하는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는 진보 성향의 대법원장이, 보수 진영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는 보수 성향의 대법원장이 임명이 됐다.

헌법 제104조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난다고 해도 현행 헌법에서 총리가 대법원장을 임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설사 박 대통령이 실질적인 임명 권한을 총리에게 넘기고, 본인은 단순히 서명만 한다고 해도, 총리가 여야의 입장을 모두 반영한 대법원장을 쉽게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역시 내년 2월에 퇴임 예정이어서 누가 신임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임명 권한을 행사할지의 문제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위원 임명은 누가…법률안 거부권도 논란 = 헌법 제87조에 따르면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이 신임 총리에게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을 준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특히 대통령이 4대 권력기관장으로 통하는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에 대한 임명 권한을 쉽게 놓을 수 있을지도 두고볼 일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률에 대한 거부권 행사 문제도 있다.

헌법 제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2선 후퇴를 하고, 총리가 내각을 통할하게 된다면 누가 거부권을 행사하느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회에서 국정 기조와 맞지 않는 법률안을 처리한다고 해도 행정부가 이에 반대하지 못한 채 단순히 서명만 하는 '거수기'역할만 할 수도 있다.

◇국정중단 최소화해야…"개헌 통해 초헌법적 상황 해소 필요" =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 상황은 궐위나 사고 상황에 해당하지 않아 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해 내각을 통할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

그럼에도 국정중단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헌법에 위반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국정의 동력이 꺼진 상황에서 헌법적인 부분만 따질 수는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이 내치에서는 손을 떼겠다는 정치적인 약속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초헌법적인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국정중단과 초헌법적인 상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초헌법적인 상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그렇지만 초헌법적인 기간을 줄이기 위해 개헌을 통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