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4차 주말 촛불집회가 19일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이날 집회는 지난 주말(12일) 주최 측 추산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이 모인 사상 최대 촛불집회 이후 숨고르기하는 계기로 관측됐다. 그러나 전국에서 모인 인원은 주최 측 추산으로 95만명(경찰 추산 26만여명)에달했다.
국정농단 의혹이 계속 불거지는 와중에 박 대통령 측이 검찰의 대면조사 데드라인(18일)에 응하지 않고,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와 관련한 학사·입시농단 의혹이 교육당국 감사에서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난 여파로 풀이된다.
◇ 서울에 주최측 추산 60만(경찰 추산 17만) 촛불…'정유라 의혹' 뿔난 고3도 가세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 1천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 행사를 개최했다.
주최 측은 이날 전국에 모인 인원을 95만명으로 추산했다. 서울에 60만명, 지역 35만명이다. 경찰은 서울에 17만명, 서울 외에는 70개 지역에 9만2천여명 등 26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주 3차 주말집회를 거쳐 다음 주말(26일) 다시 서울 집중집회가 예정된 만큼 이날은 집회 국면이 다소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최 측과 경찰 추산 모두 지난주와 엇비슷한 규모를 기록했다.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던 서울 광화문 행사는 청소년, 여성, 법조인, 세월호 유가족, 노동자 등 각계 시민들의 시국발언,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영상 상영,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직후여서 고3 수험생 참가자가 눈에 띄게 많았다. 정유라씨와 관련한 고등학교 학사 농단·대학 부정입학 의혹 등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는 당사자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단상에 오른 수험생 배유진(18·대구)양은 "'학생은 공부나 하라'는 말 들을까 봐 수능을 끝내고 올라왔다"면서 "선택할 시간을 충분히 줬는데 언제까지 눈 감고 귀 막고 그 자리에 있을 건가"라며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현장에서 만난 수험생 이모(18)양은 "우리는 수행평가, 수능, 내신 등 많은 것을 준비하면서 수험생활을 했다"며 "정유라는 고3 때 17일 출석하고 이화여대에 갔다는데 '내가 이러려고 공부했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하야 전국 청소년 비상행동'은 이날 집회에 앞서 종로 영풍문고 앞에서 시국대회를 열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던 대한민국 교육제도가 비선 실세 앞에서는 어떻게 작용했나"라며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한국노총도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주최 측 추산 5만명(경찰 추산 1만3천명)이 참가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쟁취한 민주공화국의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현 시국을 개탄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야권 주요 정치인도 노동자대회에 참가해 박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다.
지난주까지는 박 대통령을 상대로 퇴진 또는 하야를 요구하는 구호가 주를 이뤘다. 이후 검찰이 박 대통령을 사실상 피의자로 규정한 사실이 알려진 결과인지 이날은 '박근혜는 범죄자다', '범죄자를 구속하라' 등 구호가 전면에 등장했다.
촛불 민심에 동조하는 유명 가수도 광화문 행사에 출연해 시민들과 호흡을 맞추며 마치 공연장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무대에서 '상록수', '걱정말아요 그대', '행진' 등을 부른 가수 전인권은 "세계에서 가장 폼 나는 촛불집회가 되게 합시다"라며 시민들에게 평화시위를 독려다. 시민들은 환호와 '떼창'으로 화답했다.
◇ 청와대 남쪽 율곡로 또 열려…2주째 촛불 물결
광화문에서 본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종로, 신문로, 새문안로 등을 지나 광화문 앞 율곡로상에 있는 내자동로터리·적선동로터리·안국역로터리까지 행진했다. 율곡로는 청와대에서 1㎞가량 남쪽으로 떨어진 대로다.
주최 측은 애초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등 청와대와 근접한 지점을 포함한 8개 경로를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율곡로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지점까지만 행진하도록 조건 통보했다.
앞서 12일 3차 집회에서 율곡로 행진을 처음 허용한 법원은 이번에도 주최 측이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해 율곡로 행진은 허용했다.
다만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까지는 행진을 금지하고, 창성동 별관과 삼청로 쪽은 오후 3시부터 2시간30분 동안만 행진하도록 조건을 뒀다. 청와대에서 불과 460m 떨어진 창성동 별관까지 행진이 허용된 것은 처음이다.
참가자들은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로터리 방면에 모여 집회를 이어갔다. 한때 내자동로터리에서 광화문 누각까지 경찰 추산으로 6만명이 넘는 인원이 늘어서 경찰과 대치한 채 청와대를 향해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계속했다.
경찰은 율곡로와 사직로 북쪽에 차벽을 쳐 시위대 진출을 차단했다. 시위대는 자정을 넘겨서야 해산했다. 경찰과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 지역서도 "박근혜 퇴진" 주최측 35만(경찰 7만) 촛불 물결
대구, 광주, 대전, 부산 등 지방 주요 도시는 물론 상당수 중소도시까지 60여곳 시민들도 촛불 대오에 동참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인 대구에서는 7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구비상시국회의가 '박근혜 퇴진 3차 시국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 1만5천여명(경찰 추산 5천여명)은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던 대통령이 또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며 시내 2.4㎞를 행진하면서 '박 대통령 하야', '새누리당 해체'를 외쳤다.
'박근혜 퇴진 경남운동본부'도 이날 오후 창원시청 광장에서 4차 시국회의를 열고 최순실 게이트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주최 측은 1만여명, 경찰은 3천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박근혜 퇴진 광주시민운동본부'가 주최한 광주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3만명 이상, 경찰 추산 1만7천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단체별로 행진한 뒤 5·18 민주광장에 모여 '범국민 항쟁'을 이어가겠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산에서는 2만여명(경찰 추산 7천여명)이, 대전에서는 3만여명(경찰 추산 6천여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은 이날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 35만명이, 경찰은 오후 7시 기준으로 7만여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며 촛불집회를 폄하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지역구 강원도 춘천에서도 7천여명(경찰 추산 2천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김 의원의 지역사무실까지 행진해 항의집회를 이어갔다.
◇ 박사모 등 보수단체 "대통령 사수" 맞불집회
보수단체들은 이날 박 대통령 하야에 반대하며 야권과 진보진영을 비판하는 맞불집회를 개최했다.
박 대통령 팬클럽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80여개 보수단체는 서울역 광장에서 7만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만1천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어 박 대통령 하야를 '종북좌파들의 국가 전복 기도'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대했다.
참가자들은 집회 후 '강제하야 절대반대', '대통령을 사수하자', '법치주의 수호하자'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채 숭례문과 서울역을 오가며 행진했다.
일부 참가자는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적극적이었던 언론사 취재진을 에워싸고 시비를 걸기도 했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이날 서울에 202개 중대 1만6천여명을 배치한 것을 비롯, 전국 각지 촛불집회 현장에 총 253개 중대 2만여명을 투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