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20일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금이 뇌물이 아니라 강압에 의한 출연금으로 판단되자 일단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를 반드시 관철한 뒤 '제3자 뇌물' 혐의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며 강도 높은 추가 수사를 예고한 상황이어서, 아직 돈을 낸 기업들에 '피해자 면죄부'가 주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부 기업이 연루된 특정 의혹은 계속 수사 중인 데다, 기업별 현안에 따라서는 출연금의 대가성을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검찰 수사에 이어 특검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예정이어서 재계는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53개 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제공한 774억원을 대가성이 있는 뇌물이 아니라 강압에 의한 출연금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9개 기업 총수는 물론 대다수 기업이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
재계는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롯데, 현대차, 포스코, KT, GKL 등 5개 기업명만 언급된 것에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의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 관련 지원 등 대다수 의혹이 계속 수사 중인데다, 향후 특검 수사에서 출연금의 대가성에 대한 조사가 다시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에 대다수 기업에서는 "한동안은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최씨 회사인 비덱에 승마 지원과 관련해 35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알려진 삼성은 애초 중간수사결과에 승마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했다면서 향후 수사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오늘 중간 수사결과에 (삼성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안도할 일은 전혀 아니다"면서 "조만간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돼서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제3자 뇌물 공여 혐의는 계속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더 지켜봐야 한다. 승마 얘기도 앞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이미경 부회장 퇴진 압력과 차은택씨의 국정개입 의혹 등과 관련해 여러 의혹에 결부된 CJ그룹 측은 "수사가 아직 끝난 게 아닌 만큼 딱히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대한 70억원 추가 기부와 관련해 뇌물이 아니라 직권남용 혐의가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적용되자 다소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다.
현대차그룹은 최씨 지인 기업에 대한 안 전 수석의 납품 검토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고, 포스코그룹은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 곤란하다"고만 밝혔다.
역시 여러 건의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린 한진그룹은 "검찰이 수사하는 사안에 대해 기업이 이렇다저렇다 논평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도 일단 중간수사결과에 언급되지 않은 점에 안도했다.
한진의 한 관계자는 "(평창올림픽 관련 추가 소환 가능성에 대해)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검찰에서 또 소환하려는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다음 달 초순께 특검이 활동을 개시하기 전까지 검찰이 2~3주 정도 더 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향후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되면 이미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돌아온 기업인들이 국조특위에 또 다시 증인으로 줄줄이 불려 나가야 할 사태가 초래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앞으로 검찰, 특검, 국정조사 등 세 개 트랙으로 계속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 기업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특히 특검 수사와 국정조사 과정에서 대기업과 청와대 간에 이뤄진 모종의 거래나 최씨 측과 관련된 의혹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긴장도는 점점 높아질 전망이다.
한편, 대기업들의 재단 출연모금 과정에 관여한 전경련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공식 코멘트를 하지 않은 채 상황을 계속 지켜보겠다는 입장만 보였다.
이날 검찰 발표에는 최순실·안종범씨가 전경련 53개 회원사를 상대로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 출연금 774억원을 강제출연하도록 강요했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모금한 전경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오늘 보면 전경련이란 단어가 4, 5차례 언급됐지만 그게 전부"라며 "앞으로 어떻게 입장을 가져갈지 더 봐야 한다. 특검이 아직 출발도 안한 상태인데 전체도 아닌 일부만 나온 것에 대해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한 재계 인사도 "공소장에 언급되지 않았다고 해서 완전히 무혐의라는 뜻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다른 재계 인사는 "검찰 수사보다 특검 수사는 훨씬 더 강도 높게 진행될 텐데 앞으로 최소 몇 개월 동안은 재계 전체가 벌집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