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시립장사시설인 인천가족공원에 화교(華僑) 납골당 등 약 9천기 규모의 외국인 묘역을 조성했다. 국내에서 지방정부 차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장사시설을 마련한 사례는 인천이 유일하다.
인천화교협회는 23일 오전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내에 있는 화교 납골당 '자은탑(慈恩塔)'에서 조상에게 납골당 개장을 고하는 제사를 올렸다. 제사는 인천 화교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중국 산둥식으로 지냈다.
제단에는 산둥성 전통에 따라 과자, 과일, 고기, 채소 등을 각각 5가지씩 올렸고, 제단 옆에 설치된 향로에서는 지전(紙錢)을 태웠다. 화교 납골당에는 중국풍 패루와 정자도 마련됐다.
인천시는 520억원을 투입한 인천가족공원 2단계 사업의 일환으로 화교 납골당 5천7기를 조성해 이날 개장했다. 인천가족공원에 있던 화교 묘지 2천990기 가운데 연고가 있는 400여 기가 납골당에 봉안될 예정이라는 게 인천화교협회 설명이다.
나머지 묘지는 대만과 미국 등으로 건너간 후손들이 모셔갔고, 연고가 없는 분묘는 관련 법에 따라 다른 납골당에 임시 안치됐다.
인천 화교 묘역은 인천의 도시개발과정에서 세 차례나 이전해야 했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 제물포 일대에 치외법권지역인 청나라 조계가 설정되면서 중구 내동에 제공된 토지에 처음 조성한 화교 묘역은 일제강점기 시가지정비로 인해 남구 도화동으로 옮겨졌다.
1960년대 선인학원의 전신인 성광학원이 성광공업고등학교(현 선인고) 등 학교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화교 묘역은 남동구 만수동으로 또다시 밀려났고, 1980년대 말 만수동 택지지구 조성과 구월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부평공설묘지(현 인천가족공원)에 묘지가 이장됐다.
손덕준 인천화교협회장은 "화교가 인천에 정착한 이래 수차례 조상의 묘역을 옮겨야 했던 아픈 과거를 겪었다"며 "이제야 조상들을 편히 모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인천가족공원 화교 묘역 좌측으로는 1902년 중구 율목동에 조성된 일본인 묘역에 있던 묘비 51기가 안치됐다. 인천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성 누가병원'을 설립한 엘리 바 랜디스(Eli Barr Landis·1865~1898) 박사 등 개항기를 겪은 외국인 66명이 안치된 청학동 외국인 묘지는 내년 상반기까지 일본인 묘역 옆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인천시는 청학동 외국인 묘지의 역사성을 고려해 이장작업을 문화재 전문기관에 맡겼다. 화교 묘역 우측으로는 인천에 살고 있는 외국인을 위한 다문화 묘역 4천110기를 조성했다.
화교 연구자인 송승석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는 "한국 화교의 시발지로서 인천시가 화교와 외국인을 위한 묘역을 조성한 것은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