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까?

참으로 기막힌 판결이다. 지음(知音)이란 고사성어가 등장할 정도로 재판부가 고뇌와 번민 속에 내린 선고라고 여겨진다. 130억원대 주식대박을 터트린 진경준 전 검사장의 뇌물죄에 대한 무죄판결 얘기다. 앞서 지난 7월말 검찰이 진 전 검사장을 기소하면서 그의 예금과 채권, 부동산 등 130억원대의 재산에 대해 '추징 보전'을 법원에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으나 이번 무죄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진 전 검사장은 재산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이런 판결을 인정할 국민들의 법 감정이 어떨지 벌써 궁금해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제3자 뇌물수수 등 혐의로 기소된 진 전 검사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진씨가 2010년 대한항공과 관련한 내사 사건을 무혐의 종결해주는 대가로 처남의 청소용역 회사에 147억원어치 일감을 받은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마저도 몰수·추징 대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 돈 가운데 얼마가 부정한 이익인지를 검찰이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결론적으로 진 전 검사장은 시쳇말로 4년 아니 항소심 등에서 형량이 줄어들 경우 2~3년 정도 감방에서 사식 먹어가며 독서로 시간을 보내면서 때우고 나오면 수백억원대의 재산가로 화려한 제 2의 인생을 펼칠 수 있는 면죄부를 준 판결이나 다름없다. 어느 영화에서 본 듯한 장면이다.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핵심 기소쟁점인 김정주 넥슨 NXC 대표로부터 2005년 무상 취득(4억2천만원·훗날 130억 주식대박이 된 자금)한 넥슨재팬 주식 건에 대해서는 '공짜 주식'을 받았다는 직접적인 대가 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사법부의 판단이다. 둘의 관계는 '지음(知音)관계'라며 고사성어까지 인용해 오히려 순수성을 재판부가 인정해줬다. 더욱이 "김정주가 고등학교 때부터 진경준을 '유일한 친구'라고 불렀고 특별한 케이스라고 진술했다"며 "두 사람은 일반적인 친한 친구사이를 넘어 서로 지음(知音) 관계로 보인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음이란 고사성어는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와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어떤 연주를 해도 친구인 종자기가 백아 연주곡의 정확한 의미를 알았다고 해서 만들어진 고사성어로 눈빛만 봐도 상대 마음을 알아주는 절친 중의 절친이란 뜻이다.
이쯤되면 최순실씨와 탄핵풍을 맞고 직무정지된 박근혜 대통령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내가 어려울 때 도움을 주던 사심없는 사람이었다"고 최씨와의 관계 설정을 밝혔다. 국가기밀인 대통령 연설문 등을 고치는 게 때론 짜증이 날 정도였다고 최씨가 언급했다는 청문회 증인들의 얘기를 듣는 국민들은 "도대체 최씨가 누구이기에 대통령 눈과 귀를 가로막는 엄청난 마력을 가졌는지에 대해 기가 막히다"는 허탈함과 함께 "주술(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내젓고 있다. 검찰이 기소는 했지만 특검이 발족돼 법정에 오르기까지는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이번 진 전 검사장의 판결에 비춰볼 때 최씨와 박 대통령의 관계는 어떤 고사성어를 인용할지 모를 일이다. 진 전 검사장과 김정주 대표가 고교때부터 이어진 인연이라면 최씨와 박 대통령은 최씨의 아버지 고 최태민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정확한 인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국민들이 사법부에 또 한 수 배운 것 같다.
/김성규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