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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음성군 맹동면 한 오리 농가 사육장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오리를 살처분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이 제대로 안되고 있어 근본적인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새는 못 막더라도 방역만 제대로 하면 확산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며 강력하면서도 촘촘한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 철저한 준비태세 갖춰야

무엇보다 AI가 매년 겨울철마다 발생하는 '연례행사'가 되지 않으려면 AI 바이러스가 유입되기 전에 철저한 준비태세부터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북대 수의과대학장인 정규식 교수는 30일 "이미 AI가 터질 대로 터지고 나서 심각성을 느끼는 것이 문제"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AI 발생 시기가 겨울로 사실상 고정돼 있고, 이 시기에 철새가 집중적으로 날아오는 점을 고려하면 사후 관리가 아닌 예방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겨울 창궐한 H5N6형 AI 바이러스는 방역 당국이 아닌 민간 대학 연구팀이 지난 10월 28일 천안 봉강천에서 연구 목적으로 채취한 야생원앙 분변에서 최초로 발견됐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환경부가 각각 연중 내내 수시로 야생조류 포획 및 분변 채취를 통해 AI 등 조류질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예찰 활동을 하고 있지만, 결국 양 부처의 예찰 시스템 모두 구멍이 있다는 점이 여과 없이 드러난 셈이다.

정 교수는 "특히 이번에 터진 H5N6형만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재조합이 일어나 인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등 위험이 늘 도사리는 만큼, 투자를 늘려서라도 전국적으로 AI 발생 가능성이 큰 밀집 사육지나 철새 도래지 주변도 분석해 상시 예찰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이 발달한 만큼 AI가 통제 불능으로 퍼지기 전에 미리 철새가 이동하는 경로나 낙하지점 등을 파악해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다고도 제언했다.

◇ 초동대처 실패...구조적 시스템 고쳐야

농가에서 AI가 처음 발생했을 때 초동대처에 사실상 실패한 현재의 구조적인 시스템도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에 범정부 차원의 AI 관계장관회의가 처음 열린 것은 농가 최초 신고 이후 26일 만이었다. AI 위기경보는 바이러스가 사실상 전 지역에 확산한 이후인 16일에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올겨울 우리나라와 똑같이 H5N6형 AI가 발생한 일본은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즉각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방역 상황을 챙겼던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바이러스 확산의 '골든타임'을 놓쳤고, 최단 기간 내 최악의 피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순실 정국 등 국정 공백 사태의 영향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강력한 방역 매뉴얼 이 없는 것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모인필 충북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현재의 방역매뉴얼 규정은 상당 부분 '검토한다', '심의를 거쳐 결정한다' 등 모호하거나 애매한 표현으로 돼 있다"며 "콘트롤타워에 따라 그때그때 매뉴얼이 바뀌는 것이 아닌 어떤 상황이라도 즉각 작동할 수 있는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 교수는 또 "살처분만 하더라도 24시간 이내에 완료하도록 규정이 돼 있지만 지금은 살처분 명령이 떨어지면 그 때에 가서 인력이나 매몰지를 확보하고, 그러다보면 결국 살처분이 지연되고 방역구멍이 생기게 된다"며 "살처분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인력이 동원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몰지 확보와 관련해서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살처분 매몰지를 확보한 가금농가만 사육허가를 하는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 방역 현장 곳곳에 구멍

방역 현장 도처에 깔린 '구멍'을 메우지 못한 것이 과거와 달리 인접 농가 간 바이러스 확산을 초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농림축산검역본부 산하 AI 역학조사위원장인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도 "방역 현장에서 AI 매뉴얼인 SOP가 안 지켜지고 있다"며 "도살처분 인력만 하더라도 철저한 교육이 필요한데 음식점 배달원 등 외부인의 출입관리조차 잘 안 될 정도로 도처에 구멍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무리 방역준칙을 촘촘히 하더라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만큼, 매뉴얼 위반시 처벌 규정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방역 현장을 총괄하는 역할을 해야 할 가축방역관(수의사)의 권한이 적은 데다 그마저도 지자체 3분의 1은 가축방역관이 아예 없는 등 방역 전문 인력난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아울러 AI 사태 때마다 불거진 '맹탕' 소독약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이달 15일 기준으로 AI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178곳 중 156곳(중복 제외)에서 효력 미흡 혹은 미검증·권고 제품 등 엉터리 소독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발생 농가의 87%에서 사실상 '하나마나 한' 소독을 한 셈이다.

이와 함께 농장 단위에서부터의 방역 의식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규식 교수는 "의심 가축이 발생하면 곧바로 방역 당국에 신고하고 주변 이동을 삼가는 등 매뉴얼을 지키기보단 '옆집도 그런가'하고 농장주가 인근 농가에 갔다 오는 등 농장에서부터 방역에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농장주의 철저한 자가방역이 확산을 막는 가장 기본 중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