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위치·말주변 없으면 그들의 뻔뻔함 대응도 못해

무슨 말일까. 나무 그늘에 쉬면서 한 말이 '열매를 맺지 못한 나무라 쓸모가 없다'는 것인데. 잠시나마 열매를 맺지 못하는 플라타너스가 생물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따져볼 뻔했다.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한다. 후안무치 특징 중 하나가 오만이다. 이런 유형에서 나타나는 오만은 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지나친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신이나 가족의 사회적 지위, 권력이나 부를 믿고 행동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부분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증상을 보인다.
후안무치의 또 다른 증세는 '탐욕'이다. 내 것은 물론 남의 것도 내 것이어야 한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성공할 것 같은 일에 숟가락 슬쩍 얹어 이익을 나눠 가져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겉으로는 돕겠다는 취지로 접근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이뤄놓거나 이루기 직전에 말 한마디 얹는 정도로 슬쩍 무임승차하는 민첩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혹시 일이 잘못이라도 되면 자신은 전혀 무관하고, 그 일에 관여했던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이런 유형은 '착하면 손해 본다, 정당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상관없다'는 고약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4개월 가까이 '국정농단 TV 방송'이 연일 화제다. 몇몇 개인과 정부관리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도 죄 없다 주장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조선 임금 중 선조는 후안무치의 극치를 보여준 인물이다. 자신만 살겠다고 중국으로 달아나려다 신하들의 간청으로 어쩔 수 없이 국경인 의주에 머물면서 온갖 갑질을 다 했다고 한다. 1597년 정유년(丁酉年) 3월 4일 일본 침략에 맞서 전장에서 공을 세우고 있던 이순신은 죄인 신분으로 서울로 압송된다. 군공(軍功)을 날조해 임금을 기만하고 가토의 머리를 잘라오라는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게 죄목이었다. 선조에게 이순신은 나그네들이 더위를 식혔던 플라타너스였다. 적이 임금인 자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이순신이 큰 공을 세웠지만, 선조는 이순신의 도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만함을 드러낸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보낸 교서에는 '백 리를 가는 자는 구십 리로 반을 삼는 법이니 그대는 끝까지 힘쓰라'는 대목이 나온다. 칭찬 없는 이 교서에는 이런 말도 적혀 있다. '이제 적의 형세가 기울어지니 하늘이 노여움을 푸는 줄을 알겠도다'
극단적으로 표현해보면 "적의 기세가 기우는 것은 이순신 네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노여움을 푼 것이니 자랑 말라. 하늘도 노여움을 풀고 적의 기세를 꺾는데 어찌 너는 적군을 몰아내지 못하느냐. 내가 명령을 내렸는데도 너는 완벽하게 승리하지 못했으니 너의 죄가 무겁다"는 얘기다.
후안무치를 보이는 사람들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거나 언변이 화려하다. 반면 낮은 위치에 있거나 말주변이 궁색한 사람들은 그들의 뻔뻔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산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구차하게 따져야 하나. 이의를 제기했는데 혹시나 애매한 사실관계를 따지다 증거라도 내놓으라 하면 뭐라 할 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고 만다. 한편으로는 지위가 높거나 힘이 센 사람에게 대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나약한 의지 때문일 수도 있다. 더러는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다투지 않고 지낼 수 있어서, 대단한 진실이나 큰돈을 놓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굳이 다툴 필요가 없어서란 변명도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거다. 플라타너스처럼.
/이진호 인천본사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