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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의 한 인형 뽑기 방에서 한 시민이 인형 뽑기를 시도하고 있다. 전국 인형 뽑기방 수가 최근 2년 사이 24배가량 증가하는 등 대표적인 '불황 업종'으로 꼽히는 인형 뽑기가 성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어렵게 뽑은 인형들을 팔려고 해요. 싸게 드리겠습니다."

한 누리꾼은 지난달 3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형을 판매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침대 위에 인형이 빼곡히 진열된 사진을 올리고 그 밑에 "제가 직접 인형뽑기방에서 뽑은 인형들"이라고 설명까지 곁들였다.

글이 올라온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잠만보 팔렸나요?' '메밀군 얼마인가요?' 등 인형 가격에 대한 질문이 빗발쳤다.

"인형 뽑기로 돈 날리는 것보다 여기서 사는 게 더 이득일 듯"이라며 경제성을 면밀히 따지는 누리꾼도 있었다.

위치기반(LBS)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 열풍에 힘입어 잠만보, 피카추, 고라파덕 등 포켓몬 캐릭터는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특히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메밀군 인형'은 다른 인형들보다 고가에 거래됐다. 고가라지만 실제 가격은 오프라인 상점에서 판매하는 동일한 인형의 절반값(6천∼7천원)에 불과했다.

이틀 새 이 SNS에 올라온 인형 판매 글은 수십 건에 달한다. 모두 인형뽑기방에서 손수 뽑은 것으로 보이는 인형들이다.

2년 새 전국적으로 24배(500여 곳) 늘어난 인형뽑기방의 증식 속도와 비례해 뽑은 인형을 온라인으로 되파는 '신(新) 보부상'도 늘고있다.

판매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가 이뤄지도록 중간자 역할을 하는 '상인'이 등장한 셈이다.

인형을 싼값에 사고 싶은 사람과 인형 뽑기로 '재미'를 본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연출된 이색 풍경이다.

인형을 판매한 경험이 있는 이상욱(29)씨는 "인형을 뽑는 재미에 맛 들리다 보니 어느새 방 한쪽에 인형이 수북이 쌓여 있더라"며 "인형 뽑는 재미도 느끼고 돈벌이도 쏠쏠하고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즐거움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젊은 세대가 만들어낸 '디지털 원주민 문화'라고 진단한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라면 인형이 많아도 방구석에 두고 손도 대지 않을 테지만, 디지털 기술을 어려서부터 사용한 젊은 세대들은 SNS를 이용해 실익을 챙긴다"며 "인형을 뽑는 재미에 취한 김에 돈도 벌 수 있는 '중간 상인'을 자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형뽑기방이 전국적으로 성행하다 보니 인형을 낚는 기술을 익힌 사람은 많은 인형을 시장에 재공급한다"며 "인형을 뽑고 싶어도 기술이 부족한 사람의 수요 덕택에 또 하나의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이같은 현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