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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말레이시아 경찰청의 김정남 피살 이후 첫 공식회견 중계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지 1주일 동안 상황은 긴박하게 흘러갔다.

암살단은 외국 국적의 여성 2명을 내세워 단 5초만에 범행을 완수했고 쉽게 종류가 특정되지 않는 용된 독극물을 사용하는 치밀함으로 '완전범죄'를 노렸다.

그러나 공항 폐쇄회로(CCTV) 등으로 수상한 행적이 하나씩 꼬리가 밟히면서 말레이 당국의 수사가 급물살을 탄 끝에 북한이 배후에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수사 잠정결론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 김정남, 외국女 2명 공격에 30분만에 사망

19일 말레이 경찰의 공식 기자회견과 현지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지난 13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에서 김정남은 가족이 있는 마카오로 떠날 항공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젊은 여성 2명이 다가가 앞뒤로 그를 막아섰다. 독극물로 보이는 물질을 김정남 얼굴에 분사 또는 투입한 이 범행에는 단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현지 매체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범행 당시를 보여주는 CCTV와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수많은 CCTV만 아니었으면 완벽한 범행이 될뻔했다"고 전했다.

김정남은 출국 대기장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고통을 호소했고 공항 의무실을 거쳐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공격받은 후 30분만이었다.

두 여성 용의자는 사건 이틀 만인 15일 차례로 붙잡혔다.

베트남 국적의 엔터테인먼트 관련 직업을 가진 도안 티 흐엉(29)과 스파 마사지사로 일한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시티 아이샤(25)는 사건 당일까지 7일간 체류하는 일정으로 말레이에 있었다.

이들은 경찰에서 장난 영상을 촬영하는 줄 알았다며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두 여성 모두 범행 수개월 전부터 용의 남성들과 접촉하는 등 수상한 행적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때만 하더라도 북한 배후보다는 다국적 청부 암살단이 아니냐는 의문이 강하게 제기됐다. 말레이 당국은 "북한 배후설은 추측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 드러나지 않은 독극물…北-말레이 부검·시신인도 '줄다리기'

아직 공식 발표는 없지만, 현지 매체를 종합하면 김정남 암살은 '독살'이었다는 추정이 가장 우세하다.

김정남은 사망 직전 고통을 호소하며 "액체가 뿌려졌다"고 말했고 처음 검거된 베트남 여성은 경찰에서 범행을 사주한 남성이 어떤 물질을 장갑에 덜어줬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 경찰부청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김정남 사인에 대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며 독성 검사 중이라고 말했다.

15일 김정남 시신에 대한 부검이 실시되기 전후로 말레이와 북한 당국은 줄다리기를 벌였다.

사건 초기 말레이 정부는 수사가 종료되면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인계할 수 있다고 시사했지만, 북한은 부검을 반대하며 시신인도를 요구했다.

급기야 강철 북한대사는 17일 밤 언론 앞에서 말레이가 '적대세력'과 결탁했다며 말레이 당국의 부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소리를 높였고 말레이 당국자들은 "북한은 현지 법을 따르라"고 맞서 양국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상태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시신 인도에는 "유가족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원칙을 밝히면서 다만 가족이 시신을 받으려면 '직접' 와야한다고 강조했다.

◇ 北 용의자 1명 전격 체포…도주 4명·연루 3명 모두 북한인

말레이와 북한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김정남에게 독극물을 뿌린 것으로 보이는 두 여성은 '암살단'의 일부에 불과하고 범행을 시킨 주동자는 따로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주동자는 북한인임이 속속 드러났다.

범행 현장에서 여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남성 4명이 CCTV에 잡혔고 이들이 모두 북한인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17일 밤 말레이 경찰은 그중 1명인 북한인 리정철(46)을 전격 체포했다.

그가 북한 대학에서 과학·약학 전공하고 인도의 연구소에서도 일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독극물 제조역'이 아니었느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경찰이 그를 북한 정찰총국 소속으로 파악했으며 그가 은신했던 아파트는 지난 2011년부터 북한 공작원들의 은신처(safehouse)로 사용돼 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뒤를 이었다.

리정철 검거로 탄력을 받았던 북한 배후설은 19일 경찰의 공식 기자회견으로 더욱 힘을 얻는다.

이브라힘 부청장은 리지현(33)·홍송학(34)·오종길(55)·리재남(57) 등 북한 남성 용의자 4명이 모두 말레이시아 밖으로 출국해 도주중이며 리지우(30)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사진만 공개한 북한인 2명도 사건과 연루돼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말레이 당국은 사건의 배후를 북한으로 명확히 지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브라힘 부청장은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남성) 용의자들이 모두 북한 국적"이라고 말해 북한의 역할을 시사했다. /쿠알라룸푸르·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