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을지라도 발길 돌리는 용기 보여야
헌재 결정전 '승복' 약속 위기극복 첫발

대한민국에 깃든 불온한 기운의 발원지는 북한이다. 20대의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단한 마수로 이복 형 김정남의 목숨도 거두었다. 권력의 장애물이라면 혈족의 목숨마저 거두는 결단은 그가 권력의 속성을 터득한 전제적 지도자라는 증거다. 그의 폭주가 취약한 정통성을 감추기 위한 만행이고, 결국 그 만행의 결과로 북한 엘리트들과 주민들이 그를 몰아낼 것이라는 낙관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이다. 바다와 육지에서 대륙간탄도탄이 성공적으로 발사될 때마다 터트리는 김정은의 파안대소에 미국, 중국, 일본이 긴장하고 있다. 그는 20대의 철 없는 망나니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힘의 질서에 정통한 천부적 정치 승부사일지 모른다.
김정은의 핵무장 질주와 이로 촉발된 대한민국에 집중된 불온한 국제정세로 모골이 송연해야 마땅한 상황이다. 위기의 관리와 극복을 위한 비상한 대응이 한창이어야 당연한 시국이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밖에서 몰아닥친 한파를 내부의 열기로 이겨내고(?) 있다. 탄핵정국의 열기가 국제정세의 한파를 녹이는 형국이다. 중국의 비이성적인 사드보복이 노골화된 지난 주말 각 정당은 중국에 자중을 촉구하는 형식적인 논평 한장으로 대응한게 전부였다. 대신 각당의 주요 대선 예비후보들은 촛불 민심과 태극기 군중이 벌이는 탄핵내전의 한복판으로 달려갔다. 예비후보들 대부분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민심과 이를 반대하는 민심의 충돌로 발생한 열기를 자신의 대권 에너지로 전환하려 기를 쓰고 광장을 찾는다. 광장행을 거부한 주자들도 있지만, 광장의 동력을 거부한 대가로 그들의 지지율은 남루하다.
광장에서는 북핵, 사드, 중국의 도발, 일본의 망언, 국정교과서 등등 우리의 문제와 현안들이 정략적으로 해석돼 적대적 대치의 빌미로 전락한다. '촛불'도 대한민국을 위하고 '태극기'도 대한민국을 걱정한다지만, 정작 그들이 위하고 걱정하는 대한민국은 두동강의 위기를 향해 질주중이다.
기사소설에 푹 빠져 자신을 편력기사로 착각한 돈키호테는 "약한자 가난한자를 돕기 위해 운명이 부여하는 그 어떤 모험에도 내 힘과 내 한 몸을 내던질 굳은 결의를 품고 모험을 찾아 고적한 들판을 헤매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로맨틱한 옛시절의 기사로 착각한 대가는 조롱과 수모 뿐이다. 광장으로 달려가는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기사도에 열광해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본다. 우리의 진보와 보수가 혁신없이 퇴행적인 편가르기로 내부 패권에 몰두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장을 완료했고, 중국은 중화주의를 재건해 우리를 속국으로 여기고, 미국은 동맹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이기적 국가로 변했고, 일본은 여전히 후안무치한 역사관으로 우리를 조롱하고 있다.
돈키호테의 종자 산초 판사는 앞뒤 없이 질주하는 주인에게 "비겁함과 무모함 양 끝 사이 중간쯤에 용기가 있다"고 말한다. 위기의 징후들이 대한민국을 유령처럼 배회중이다. 광장의 열기에 빌붙는 대한민국 정치인, 대권주자들이 무모해 보인다. 비겁하다 욕먹을지라도 무모함의 끝에서 발길을 돌리는 용기를 보여줄 때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 전에 여야 정당과 대권주자들이 조건없이 모여 '헌재 결정 승복'을 약속하자. 그 약속으로 부터 위기 극복의 첫 발을 떼야한다.
/윤인수 편집국 국차장 (총괄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