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많이 찾는 전통시장
"정치가 빨리 안정됐으면…"
'경제살리기 시급' 이구동성
등산객도 차분한 주말 보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 재판장을 맡은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오전 11시 21분 이렇게 선고했다. 이정미 대행이 21분 동안 읽은 결정문 요지 중 가장 도드라진 용어는 '국민'이었다.

선고 시작에 앞서 사건의 진행경과를 설명하면서 '국민은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인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라고 적시했고, '파면 선고'의 핵심적 이유로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정미 대행이 언급한 이 두 차례의 '국민'은 아무런 특권도 부여받지 못한 '서민'으로 읽어도 무방해 보였다.

경인일보 취재팀은 이정미 대행의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내려진 후 첫 주말인 지난 11일과 12일 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인천지역 전통시장과 등산로를 둘러봤다. 취재한 전통시장 3곳 중 2곳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친히 방문해 특유의 서민 정서를 과시한 곳이기도 했다.

12일 남구 용현시장.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인천방문 일정으로 찾았던 용현시장에서는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차분한 일상 그대로였다. 가게마다 놓인 TV에서는 뉴스 대신 예능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2013년 8월 16일 용현시장 방문 때 박 전 대통령과 악수했다는 이모(여)씨는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빨리 정치가 안정돼 경기 살리기에 정치권이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채모(여) 씨도 "나도 대통령이랑 악수했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잘못을 저지른 대통령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빨리 정치권이 전통시장 살리기에 손을 모았으면 한다"고 했다.

불과 1년여 전인 2016년 2월 5일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신분으로 가게를 찾아 격려를 해줬다는 서구 중앙시장의 정모(여) 씨는 11일, "탄핵이 인용되기를 바랐지만 막상 탄핵이 되고 나니 마음이 안 좋기는 하다"면서도 "요즘 경제가 어려워 자살을 생각하는 서민들이 많은데 앞으로는 (자살하려는) 이런 사람들이 없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차기 정권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경제 살리기'를 꼽은 것이다.

요즘 정치판에 혐오감을 갖게 됐다는 중앙시장의 최모(64)씨는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주변 인물을 잘 관리하고 국가의 품격을 높였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11일 오전 11시께 인천 남구 문학산 정상. 50~60명의 등산객들이 올라와 있었는데 얘기의 중심은 탄핵 정국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다. 등산 모임 정관수정 문제나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대한민국 인천의 서민들이 보여 준 탄핵 후 첫 주말 표정은 이렇게 안정돼 있었다. 이러한 일반 국민들이 일궈낸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이틀 만에 조회 수 7천만건 이상을 넘어서며 국제적 얘깃거리로 떠오른 'BBC 탄핵 인터뷰 방송사고 동영상'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 높은 정치의식이 부각됐다. 이 BBC 월드뉴스 인터뷰에 응했던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는 "한국에서 10년을 살았는데, 한국인들이 이뤄낸 방식에 매우 감명받았다"면서 "민주주의의 대단한 성과"라고 높여 세웠다.

미국도 탄핵인용 직후 발표한 국무부 논평에서 "한국 국민과 민주적 기관이 자국의 미래를 결정한 것으로,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인천본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