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의 담배 가격 재조정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면서 담뱃세가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한국의 높은 흡연율을 고려할 때 담뱃세를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과, 담뱃세 인상이 서민들의 세금 부담만 늘리니 다시 내려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 "담뱃값 규제는 세계적 흐름"…WHO도 권장

1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등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담배소비 감소를 위한 적절한 가격정책을 강조하면서 소비자가격 및 소득수준의 증가분을 뛰어넘는 세금인상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담배소비에 공동 대응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제시한 보건 분야 최초의 국제 협약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에 비준했다.

전문가와 보건·금연 관련 단체는 이 협약을 근거로 담배 가격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뱃세를 올리면 흡연율이 떨어지고, 건강 악화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세수 확대'라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실제로 해외 사례를 보면 멕시코는 담배 소비세 인상으로 2009년 28페소였던 담뱃값이 2011년 38페소로 올랐다. 그 결과, 멕시코의 담배 판매량은 연간 18억1천 갑에서 12억7천만 갑으로 30% 줄었다. 정부의 담배 관련 세금 수입은 38% 증가했다.

영국은 '물가 연동제'에 따라 담배 소비세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1992년부터 2011년까지 담배 가격이 200% 상승했다. 이에 따라 담배소비는 반 토막이 났고 세수는 44% 증가했다.

◇ "금연 효과 미미, 서민에 부담" vs "가격 아직도 싸다…더 올려야"

담배 가격 규제가 전 세계적인 흐름인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담뱃세를 둘러싼 의견은 엇갈린다.

담뱃세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가격 인상에 따른 흡연율 감소 효과가 미미해 서민들의 세금 부담만 커진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담뱃세가 인상된 2015년 국내 담배 판매량은 667억 개비로 전년 853억 개비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지난해에는 729억 개비로 9.3% 증가했다.

회사원 김모(39)씨는 "2년 전 담뱃값이 인상됐을 때 서너 달 금연하다가 직장 스트레스에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며 "가격이 올라도 피울 사람들은 다 피우고, 거둬들인 세금이 흡연자를 위해 쓰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흡연자 권리보호를 주장하는 커뮤니티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 대표는 "담뱃세 인상이 흡연율에 미치는 효과는 일시적"이라며 "흡연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층의 부담만 커진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국가에서 흡연을 아예 법으로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면 금연구역만 늘릴 것이 아니라 길거리 간접흡연으로 인한 흡연·비흡연자 간 갈등이 없도록 일본처럼 흡연구역을 늘리는 등 흡연자들의 권리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담뱃값과 청소년 흡연 문제 등을 고려하면 담뱃세를 더 올려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다.

회사원 이모(29)씨는 "담뱃값이 인상된 뒤에도 지인들 상당수가 담배를 피운다"며 "우리나라 담배 가격을 OECD 수준으로 높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교사인 손모(32)씨는 "학교에 전자담배를 피우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로 청소년 흡연 문제가 심각하다"며 "가격이 다시 내려가면 청소년 흡연율이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성규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사는 "담뱃값 인상을 포함한 규제 정책이 만병의 근원인 흡연을 줄인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며 "흡연으로 질병 발생자가 늘게 되면 그만큼 건강보험 등 사회적 지출도 급증하므로 세금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담뱃값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절대 가격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고 커피 가격 등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것이 아니다"라며 "이제 와서 담뱃세를 인하한다면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