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 출신 11세에 父 여읜 '소년가장'
덕수상고 졸업뒤 신탁은행 취직 '주경야독'
25살에 행정·입법고시 동시합격 공직생활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한 '입지전적 인물'
2015년 아주대 맡아 '유쾌한 반란' 파격행보
학생 생계 수준만으로 외국연수 선발 '눈길'
철저함·넓은 시야 쓴소리 마다않는 '소신파'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인간승리의 드라마' '고졸 신화' 등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11세에 부친을 여읜 김 후보자는 소년가장으로 자랐고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은행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했다. 이후 32년간의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기획재정부 차관,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 등 정부 요직을 두루 지냈다.
지난해에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단수 후보로 김 후보자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의 영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정 원내대표는 김 후보자를 "살면서 이렇게 양심적이고 맑은 사람은 처음이었다"고 평가했다. 김 후보자는 이에 "대학과 약속 때문에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지 못하겠다"고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은 받아들이면서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을 이끄는 막중한 자리에 서게 됐다.
충북 음성 출신인 김 후보자는 1968년 11살 때 당시 33살이었던 아버지를 여의었다. 부친 생전에는 꽤 유복한 가정이었지만 부친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하면서 사실상 소년가장이 됐다.
김 후보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무허가 판자촌인 청계천으로 쫓기듯이 갔고. 2년 뒤에는 지금은 성남시인 경기도 광주의 허허벌판에 강제이주를 당해서 천막에서 살았다. 맏이고 동생들이 있고 어머님·할머님이 있었으니까 빨리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그런 책임감은 많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서 뾰족한 수가 없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김 후보자는 덕수상고에 들어갔고 홀어머니 등 가족을 부양하고자 한국신탁은행에 취직했다. 낮엔 은행원으로 일하고 밤엔 공부한 끝에 스물다섯 살이던 1982년 입법고시에 합격했다. 같은 해 행정고시에도 패스해 이듬해 3월 경제기획원(EPB)으로 옮겼다.
김 후보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은행생활을 했는데 그때 만 17살이었다. 야간 대학에 지원해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직장생활, 밤에는 대학생활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고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서 고시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명문고·명문대를 나온 사람이 수두룩한 경제부처에서 자신만의 치밀함과 철저함, 넓은 시야 등을 주 무기로 삼아 업무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일했고 2012년 기재부 제2차관, 2013년엔 장관직인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했다.
김 후보자는 2015년 2월부터 총장으로 아주대를 이끌며 일명 '유쾌한 반란'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사람에게 당신 먼저, 양보한다는 의미의 '애프터 유'라는 프로그램은 총장으로서 김 후보자를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어려운 학생들, 주로 소득 5분위로 해외 취업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선발해 미국 3개 대학과 중국의 상해교통대학 등에 연수를 보냈는데, 성적을 전혀 보지 않고 실제 생계 수준과 본인의 의지만을 가지고 선출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김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인사·경제 철학과 상당부분 일치해 이번 발탁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 사령탑이며 위기의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경제수장으로서 최적임자"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때때로 여당의 정책도 반대하는 소신파이며 맡은 일엔 몸을 사리지 않는 외유내강 스타일로 꼽힌다.
/김순기기자 ksg2011@kyeongin.com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 약력
▲1957년 충북 음성 출생
▲덕수상고, 국제대 법학과 졸업,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세계은행 선임정책관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획재정부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장관급)
▲아주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