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통일의 소' 빛바랜 표지석
지난 15일 오후 제주 우도면 서광리에 있는 하우목동항 인근 '전원민박' 앞. '평화 통일의 소'를 알리는 표지석도 남아 있다. 바로 이 민박집 뒷마당에 있는 축사에서 '평화 통일의 소'가 사육됐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제주 암소사이 태어난 첫째
우도 정착하고 표지석 세워
70여마리까지 번식한 후손
모두 팔려 도축 명맥 끊어져


새천년을 불과 나흘 앞둔 1999년 12월 28일 김포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당시 유정복 김포시장(현 인천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한 환송식이 열렸다.

1997년 1월 유도(留島)에서 극적으로 구출된 '평화의 소'와 제주에서 건너온 암소(통일 염원의 소)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수소를 제 어미의 고향으로 떠나보내는 환송식이 이날 개최됐다.

당시 김포시와 자매결연 도시였던 북제주군(현 제주시)은 새천년을 맞아 백두에서 한라까지 평화 통일을 염원한다는 뜻으로 이 수소를 제주 우도(牛島)로 데려가 통일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환송식이 열린 이날 오전 11시30분 2살배기 수소는 김포 제 어미, 아비의 품을 떠나 우도로 향했다.

김포에서 대한항공 화물기를 타고 제주공항까지 운반된 소는 다시 성산포항까지 차로 이동해 그곳에서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갔다.

2000년 1월 2일 이곳에서 신철주 북제주군 군수(2005년 작고)와 마을 사람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고 김포에서 건너온 이 수소 이름을 '평화 통일의 소'라 명명하는 기념행사도 개최됐다.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고 북녘땅이 훤히 보이는 김포에서 하늘길, 육로, 뱃길을 거쳐 한반도 남단 우도까지 옮겨진 이 소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지난 15일 오후 제주 우도면 서광리에 있는 하우목동항. 우도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항구에서 마을 입구 쪽으로 5분 정도 걷다 보면 '전원민박'이란 상호가 붙은 3층짜리 주택이나온다. 바로 이 민박집 뒷마당에 있는 축사에서 '평화 통일의 소'가 사육됐다. 현재 이 민박집 앞에는 '평화 통일의 소'를 알리는 표지석도 남아 있다.

2000년 1월 우도로 온 '평화 통일의 소'는 새천년 기념행사가 끝나고 당시 서광리 이장이었던 정현일(2016년 작고) 씨가 맡아 키웠다.

정씨가 운영하는 민박집 축사에서 종모우(種牡牛·씨수소)로 자라며 70여 마리의 새끼를 번식시킨 '평화 통일의 소'는 2013년께 죽었고, 그 핏줄들이 지난해까지 이 집 축사에서 길러져 왔지만 정씨가 세상을 떠난 후 모두 팔려나가 도축됐다. 소가 길러졌던 민박집 축사는 농기계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제주도에서의 '평화 통일의 소' 명맥은 끊겼지만, 아직 김포시 통진읍 가현리의 한 축사에서 2005년 태어난 '평화 통일의 소' 7번째 새끼가 길러지고 있어 '평화의 소' 핏줄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는 정씨의 부인 오금숙(55)씨가 전원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민박집에서 만난 오씨는 "새천년 행사가 끝나고 북제주군에서 '평화 통일의 소'를 맡아 기를 사람을 찾았는데 그해 소값이 폭락해 아무도 기르려 하지 않았다"며 "결국 남편이 나서서 소를 집으로 들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오씨는 "남편은 김포에서 온 그 소를 키우는 것을 자부심으로 여겼다"며 "살아생전에 '평화 통일의 소' 새끼 중 1마리를 북으로 보내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남편이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평화 통일의 소'가 우도로 오던 2000년 당시 우도면사무소 산업계장으로 일하며 실무를 담당했던 장대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수자원보전 팀장)씨는 "'평화 통일의 소'가 정현일 씨집으로 들어간 후 군청(북제주군)에서 축사도 개축해주고 표지석도 세워주며 신경을 많이 썼다"며 "당시 실무 책임자로서 평화 통일의 염원이 담긴 이 소의 명맥이 끊긴 것이 아쉽고,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제주/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