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의 구도심을 상징하는 중구청 관내에는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근대건축물이 유난히 많다. 송월동과 차이나타운, 관동에는 일본과 중국풍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9C 후반 개항기 이후 외국과의 교역 중심지로 부상한 인천항 주변에 일본과 청나라 양식의 건물이 들어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100년을 훌쩍 넘어서면서 문화적 가치로 주목받는 옛 건물을 두고 '개발이냐 보존이냐' 논란이 뜨겁다.

논란은 중구청이 지난달 송월동 옛 비누공장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나선 이후 더 거세지고 있다. 중구청은 심각한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 건물을 허물고 주차장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철거대상은 2천㎡ 부지에 있는 근대건축물 6개로, 2층 구조다. 1902년에 건립된 붉은 벽돌의 건물 3개는 '애경'의 모기업이 1912년에 비누공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인천지역 18개 시민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공장건물 철거 중단을 촉구했다. 시민단체는 근현대사의 이야기와 가치가 담긴 건물을 보존해야 할 관할 지자체가 오히려 철거에 나선데 분노한다고 밝혔다.

파문이 일자 중구청은 지역 근대건축물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이달부터 10월까지 근대건축물을 비롯한 향토문화유산 전수조사와 목록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조례에 따라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정기적으로 관리한다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를 통해 비누공장과 같은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구청이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더라도 보존을 강제할 마땅한 근거가 없는 게 현실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산을 확보해 매입하는 것인데, 사후 관리와 활용방안도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중구청에 산재한 옛 건물들은 19C 말~20C 초 인천의 경제·생활·문화·사회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이 있다면 보존의 길로 가야 하는 게 마땅하다. 다만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소유주들에 대한 보상과 법적 근거 마련도 선행돼야 한다. 그 자체가 역사인 옛 건물들을 후손들에게 보여주려는 노력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