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7년 정상회담 이후 북핵·천안함·개성공단 '시계 제로'
한·미 공동선언문, 남북대화 재개 지지… 관계복원 가속도 전망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2000년부터 본격 진행된 남북 교류 사업은 나라 안팎의 상황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부침을 겪어왔다.
2000년과 2007년 2차례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남북 관계는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며 최고점을 찍었지만 이후 북한의 핵실험과 2010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급속도로 냉각됐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그해 남북적십자회담, 남북장관급회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됐다. 2002년에는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남북통일 축구대회와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 착공식이 열려 화해 기조를 이어갔다.
2008년 초반까지 화해 분위기가 계속됐지만 그해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 교류의 가장 큰 성과물 중 하나였던 금강산 관광이 파국을 맞았고 2010년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 2013년 북한 3차 핵실험, 2016년 4차 핵실험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 관계는 좀처럼 진전되지 못했다.
부침 속에서도 남북 교류의 보루 역할을 하며 가동하던 개성공단마저 2016년 2월 10일 전면 중단되면서 남북 관계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까지 더해져 남북 교류 해법은 더 복잡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교류 기조를 명확하게 내세우고 있다. 특히 지난달 30일(미국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 이후 채택된 공동선언문에서 미국이 문 대통령의 남북대화 재개 의지를 지지한다고 명문화해 남북 관계 복원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단절됐던 남북 교류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북한 수해로 떠내려왔다가 1997년 1월 김포 유도(留島)에서 구출된 '평화의 소'. 당시 이 소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겠다던 큰 꿈은 잊힌 지 오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를 기억하며 '평화의 소' 핏줄을 돌보고 묵묵히 옆에서 지켜온 것은 평범한 우리 농민들이었다.
정권의 성향이나 나라 안팎 상황에 따라 남북 관계의 부침은 계속됐지만 '평화의 소'를 기억하고 있는 농민들처럼 평화를 염원하고 교류를 바라는 마음은 어디에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지금까지 제재, 압박을 수단으로 통일을 이룬 나라는 없다"며 "남북 교류의 폭과 속도는 조정할 수 있겠지만 교류 자체를 멈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