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를 저어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지만 다음번 물이 들어올 때도 노를 저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2분기에 사상최고 실적을 낸 삼성전자의 한 임원의 말이다. 반도체 사업부문에서 슈퍼사이클(장기호황) 국면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지만 마냥 '장밋빛 전망'을 가질 수만은 없다는 걱정이다.

현재의 실적은 3~5년 전에 그룹 차원에서 과감한 선제 투자를 한 결과인데, 이건희 회장의 오랜 와병과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수감에 그룹을 총괄해오던 미래전략실까지 해체되면서 미래에 대비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현실인식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5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내년에는 6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부침이 심한 반도체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런 상승곡선은 결국 꺾일 것이라는 게 대체적 관측이다.

최근 메모리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는 기업 데이터센터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수요 절벽'에 맞닥뜨릴 수 있는데다 200조원을 투자하겠다며 '반도체 굴기'를 외치는 중국이 대량 공급에 나선다면 반도체 사이클은 최악의 '다운턴'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에서다.

이런 위기 상황에 미리 대응책을 마련하고, 다음번 슈퍼사이클이 왔을 때 계속 글로벌리더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게 '삼성전자 위기론'의 핵심이다.

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올라타기 위해 글로벌 인수합병(M&A)에도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최종 의사결정을 할 총수 자리는 비어 있어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의 전장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올해 들어서는 새로운 대형 M&A 발표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최근 미국 인텔이 이스라엘 자율주행업체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약 17조6천억원)에 인수하고 아마존이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를 인수하는 등 글로절 경쟁업체들이 사업다각화를 위한 M&A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매각 협상에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일본으로 향해 성과를 거뒀던 것과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라는 게 전자업계의 관전평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상최고 실적을 올리면서 '총수가 없어도 문제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이는 근시안적인 생각"이라면서 "내부적으로는 총수의 빈자리가 앞으로 3~5년 뒤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