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사진·초상화 돋보이게 하는 소품 제격
옆 사람에게도 바람 나눠주는 '넓은 마음씨'
선풍기, 나을것 없지만 詩를 탄생시켜 '위안'


정진오 사진(새 데칼용)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선풍기를 볼 때마다 '선풍기를 발로 끄지 말라'는 어느 시인의 충고가 생각나 우습기도 하고 실제로 선풍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 일도 잦아지기는 했다지만, 올해처럼 선풍기에 관하여 오랫동안 마음을 쓴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올 여름은 어디를 가나 선풍기를 손에 들고 바람을 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손 선풍기의 인기가 그야말로 선풍적이다. 선풍기가 우리들의 손안으로 들어온 대신 부채를 들고 우아하게 더위를 쫓는 사람을 더 이상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손 선풍기를 얼굴이며 겨드랑이며 몸 이곳저곳에 가져다 대며 땀을 식히는 모습을 보자니 왠지 안쓰러운 생각도 들고 기온이 예전보다 많이 오르기는 올랐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부채와 선풍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부채는 예술적인 면에서는 단연 선풍기를 앞선다. 글씨도 산수화도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부채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말했다. 부채는 조상들의 삶 속에 예술이 얼마나 가까웠던가를 웅변해준다고, 천하의 절경을 간편하게 접어 손안에 들고 다니다가 생각 날 적마다 척 펼쳐내서는 그림 속 산수가 불어내는 맑은 바람을 쏘이게 한다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도 내 손안에 쥘 수 있거니와 끈 끝의 선추(扇錘)에 향이라도 매달았다면 그윽한 자연의 향내까지 더하여 음미할 수 있게 한다고.

부채는 선물로서의 격조도 선풍기보다는 낫다. 부채 선물 풍속은 아주 오래되었다. 당장 우리는 퇴계 이황 선생이 손자와 주고받은 편지글을 묶은 책 '안도에게 보낸다'에서 그 부채 선물 이야기를 확인할 수가 있다. 퇴계는 참 일찍이도 부채 선물을 준비했다. 퇴계는 1566년 정월에 손자와 그 손자의 장인에게 부채를 선물했다. 두 계절을 앞서서 이미 여름을 준비한 퇴계의 자상함을 엿볼 수가 있다. 퇴계는 또 그해 6월에는 손자에게 '칠선(漆扇)'을 선물하기도 했다. 칠선은 종이에 옻칠을 한 부채를 말한다. 일반 부채는 습기에 약해서 찢어지기가 쉬웠지만 이 칠선은 옻칠을 했기에 습기에도 강했을 터이다. 요즘처럼 비가 줄기차게 내리면서도 푹푹 찌는 때라면 이 칠선이 제격일 듯싶다.

사진이나 초상화 속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소품으로도 부채는 제격이다. 채용신이 그린 '황현 초상'에서 매천 황현의 오른손에는 가지런히 접힌 부채가 들려 있다. 이명기의 '채제공 초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채를 쥐었기에 두 초상 속 선비들의 기개가 더불어 빛을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황현이 손 선풍기를 들고 초상화의 모델이 되었더라도, 1910년 국권을 빼앗겼을 때 "나라가 망하는 날에도 목숨을 바친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는가"라면서 자결할 수가 있었을까.

부채는 또 마음 씀씀이에서도 선풍기보다는 넓다. 부채는 옆 사람에게도 바람을 나눠주고는 하는데 손 선풍기는 그저 자기 필요한 곳에만 바람을 쏜다. 부채에 비하여 나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선풍기는 그래도 인천 출신의 김영승 시인으로 하여금 '선풍기 시'를 낳게 하였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괴로웠다//(이하 생략)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