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에게도 바람 나눠주는 '넓은 마음씨'
선풍기, 나을것 없지만 詩를 탄생시켜 '위안'

부채는 예술적인 면에서는 단연 선풍기를 앞선다. 글씨도 산수화도 얼마든지 품을 수 있는 부채는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은 말했다. 부채는 조상들의 삶 속에 예술이 얼마나 가까웠던가를 웅변해준다고, 천하의 절경을 간편하게 접어 손안에 들고 다니다가 생각 날 적마다 척 펼쳐내서는 그림 속 산수가 불어내는 맑은 바람을 쏘이게 한다고, 금강산 일만 이천 봉도 내 손안에 쥘 수 있거니와 끈 끝의 선추(扇錘)에 향이라도 매달았다면 그윽한 자연의 향내까지 더하여 음미할 수 있게 한다고.
부채는 선물로서의 격조도 선풍기보다는 낫다. 부채 선물 풍속은 아주 오래되었다. 당장 우리는 퇴계 이황 선생이 손자와 주고받은 편지글을 묶은 책 '안도에게 보낸다'에서 그 부채 선물 이야기를 확인할 수가 있다. 퇴계는 참 일찍이도 부채 선물을 준비했다. 퇴계는 1566년 정월에 손자와 그 손자의 장인에게 부채를 선물했다. 두 계절을 앞서서 이미 여름을 준비한 퇴계의 자상함을 엿볼 수가 있다. 퇴계는 또 그해 6월에는 손자에게 '칠선(漆扇)'을 선물하기도 했다. 칠선은 종이에 옻칠을 한 부채를 말한다. 일반 부채는 습기에 약해서 찢어지기가 쉬웠지만 이 칠선은 옻칠을 했기에 습기에도 강했을 터이다. 요즘처럼 비가 줄기차게 내리면서도 푹푹 찌는 때라면 이 칠선이 제격일 듯싶다.
사진이나 초상화 속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소품으로도 부채는 제격이다. 채용신이 그린 '황현 초상'에서 매천 황현의 오른손에는 가지런히 접힌 부채가 들려 있다. 이명기의 '채제공 초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채를 쥐었기에 두 초상 속 선비들의 기개가 더불어 빛을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과연 황현이 손 선풍기를 들고 초상화의 모델이 되었더라도, 1910년 국권을 빼앗겼을 때 "나라가 망하는 날에도 목숨을 바친 선비가 없어서야 되겠는가"라면서 자결할 수가 있었을까.
부채는 또 마음 씀씀이에서도 선풍기보다는 넓다. 부채는 옆 사람에게도 바람을 나눠주고는 하는데 손 선풍기는 그저 자기 필요한 곳에만 바람을 쏜다. 부채에 비하여 나을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선풍기는 그래도 인천 출신의 김영승 시인으로 하여금 '선풍기 시'를 낳게 하였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괴로웠다//(이하 생략)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