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10월10일 임산부의 날을 앞두고 경인일보 사회부 박연신 기자가 지난 1일 임신 27주차를 가정한 임부체험에 나섰다. 임부체험복을 착용한 박 기자가 수원역에 도착, 힘겹게 벤치형 의자에 앉고 있다(왼쪽). 역에서 기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9㎏의 체험복을 두손으로 받친 채 생명의 소중함과 임부의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9㎏ 체험복 걷기도 버거워
버스 높은계단 오르기 숨차
안전벨트, 복부·방광 압박

기차 출입문 좁아 통과불편
3시간 지나자 하반신 경련
'전용석' 사회적 배려 아쉬워


급감하는 출산율에 인구 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여전히 미흡하고 부족했다. 특히 대중교통 이용은 임산부에게 고난의 연속이었다.

본격적인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일, 임신 27주차를 가정한 체험복을 착용하고 수원시외버스터미널을 찾았다.

고향으로 떠나는 이들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였지만 9㎏의 체험복이 마치 발가락 끝까지 짓누르는 것 같아 홀로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고속버스에 올라타는 과정은 더 힘겨웠다. 두 계단만 오르면 됐지만, 계단과 계단 사이가 높아 손잡이를 잡아야만 했다. 몸이 자꾸 앞으로 쏠려 의식적으로 젖히지 않으면 고꾸라지기 일쑤.

어렵게 좌석에 앉고도 '안전벨트'라는 난관에 다시 봉착했다. 불룩 튀어나온 배 때문인지 안전벨트가 잘 보이지 않았고, 겨우 찾은 벨트를 길게 늘어뜨려 복부를 감싸듯이 채웠다. 하지만 벨트가 곧 복부와 방광까지 압박했다.

사실 임산부는 안전벨트 미착용 단속에서 제외된다. 미착용 상태로 편히(?) 있으라는 주변 승객의 조언도 있었지만,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는 현실은 암담했다.

기차도 마찬가지. 오후 5시 출발 예정이던 부산행 기차가 연착된다는 안내가 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앉을 곳'을 찾았다. 벤치형 의자에 마침 빈 자리가 있었는데 낮은 손잡이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기차에 올라탈 때는 고속버스와 마찬가지로 탑승 계단이 걸림돌이었다. 폭이 너무 높은 탓에 한숨이 절로 나왔고, 출입문도 비좁아 몸을 옆으로 세워 비스듬하게 드나들어야 했다.

아직 자리를 찾지도 못했건만, 기차가 역에 도착한 지 3분여 만에 바로 출발하는 바람에 비틀대며 좌석을 확인했다. 내릴 때도 불룩한 배 때문에 발이 보이지 않아 헛디디는 상황이 계속 연출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리가 붓고 쥐가 나기 시작해 하반신 경련이 오는 듯했다.

시내버스와 지하철은 전용석을 마련하는 등 상대적으로 임산부에 대한 배려와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고속버스나 기차 등 다른 대중교통을 비롯해 주변엔 온통 임산부를 위해 바뀌어야 할 것 투성이였다.

기나긴 임산부 체험 3시간이 지나고 체험복을 벗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사회 제도에 언젠가 결혼 후 실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10일은 임산부를 배려, 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제정된 '임산부의 날'이다.

/박연신기자 juli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