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이나 터미널과 같은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 정치인들의 일정표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다 그런 이유이다. 유정복 시장은 이번 추석 연휴 일정을 지난 9월 25일부터 10월 8일까지 2주나 잡았다.
유정복 시장의 일정 중 지난 9월 29일에는 간판도 없는 허름한 자전거포가 들어가 있다. 중구 신흥초등학교 정문 건너편에 있는 84세 이홍복(李洪馥) 할아버지의 자전거 수리점이다. 하루 종일 문을 열어도 손님이 없을 때가 더 많은 그런 자전거 가게다.
이홍복 할아버지는 겉에서 보이는 가게 이미지와는 딴판이게도 대한민국 사이클 영웅이다. 195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한민국 사이클 국제대회 사상 첫 2관왕을 차지했다. 대회 직후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경무대에서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가게에 걸어 놓고 있다.
또 지금으로 치면 국군 체육부대 소속으로 뛴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월미도에 북파공작부대(HID)가 주둔해 있을 때 거기 소속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선수용 사이클을 제작했고, 지금은 누구나가 즐기는 사이클 동호회의 1세대 리더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살아 있는 영웅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홍복 할아버지는 사실 3년 전에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에서 울화가 치미는 일을 겪고서 인천시에 서운한 감정이 많았었다. 할아버지는 2014년 10월 4일 있었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장에서 자신이 'VIP 좌석'에 앉을 수 없게 되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인천의 스포츠 영웅을 인천에서 펼쳐지는 국제대회에서 인천시가 제대로 예우하지 못한 거였다. 경인일보는 당시 이 내용을 보도(2014년 10월 6일자 3면)한 적이 있다. 또 하나 인천시의 잘못이 있는데, 그동안 여러 차례 발간된 '인천시사'에 할아버지의 도쿄 대회 2관왕 사실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왜곡돼 있었다.
유정복 시장의 이번 추석 일정에 '표'를 의식하지 않고 이홍복 할아버지 가게 방문을 포함한 것은 다른 어떤 일정보다도 더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가 마음 속에서 버리지 못하고 있던 3년 전의 앙금을 깨끗하게 털어낼 수 있게 하고, '인천시사'의 잘못으로 인한 서운한 감정을 어루만진 때문이다.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