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붉은불개미, 도마뱀에 이어 이번에는 국내에 들어온 컨테이너 속에서 남미에 서식하는 좀이 발견됐다.

컨테이너가 검역 사각지대에 있어 외래생물 유입에 무방비 상태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19일 트레일러 기사 정모 씨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4시께 부산신항 1부두(PNIT)에서 빈 컨테이너를 실은 뒤 내부를 살피는 과정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벌레 6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몸통 길이 1㎝가량, 촉수와 꼬리를 포함하면 전체 길이 2~3㎝ 정도이고 발이 여러 개 달린 모습이었다.

정 씨는 유해 곤충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산 채로 잡아보려 했지만 워낙 빨라서 포기하고 10여 분에 걸쳐 모두 발로 밟아서 죽였다고 말했다.

벌레가 발견된 컨테이너는 브라질 남부에 있는 이타자이항에서 외국적 선박에 실려 지난 16일 부산항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벌레를 찍은 사진을 본 전문가들은 국내에는 없는 외래종 '좀' 벌레라고 판정했다.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김태우 연구사는 "사진으로 봐 외래 좀이 맞다"며 "미국이나 라틴 아메리카 등 기온이 30도 이상인 더운 지방에 사는 종으로 국내에서 발견된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곤충학회 수석 부회장인 고려대 생명과학부 배연재 교수는 "사진 속 벌레에서는 국내 서식 좀의 특성을 찾아볼 수 없어 외래종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며 "이런 좀이 이전에도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배 교수는 "좀은 번식과 생존율이 아주 높아 한번 나타나면 박멸하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집 안에 들어와 옷과 가구 등을 갉아먹는 좀은 산이나 계곡에도 서식한다. 질병을 옮기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 감만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붉은불개미가 처음으로 발견됐고 이달 14일에는 경기도 안산의 한 폐배터리 가공업체로 운송된 컨테이너 안에서 어른 중지 크기의 살아있는 도마뱀이 발견됐다.

해당 컨테이너는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에서 부산항을 통해 국내로 들어왔다.

컨테이너를 수송하는 트레일러 기사들은 컨테이너 문을 열면 바퀴벌레, 거미, 개미 등 다양한 벌레들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심지어 살아있는 전갈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 들어오는 컨테이너를 통해 다양한 벌레들이 국내로 유입하는 것은 컨테이너가 검역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공항과 항만을 통해 반입되는 화물을 검사하지만 식품과 동·식물에 국한돼 컨테이너는 아무런 검사 없이 부두에 내려진 뒤 내륙의 화주에게 반출된다.

빈 컨테이너는 트레일러 기사들이 화주에 가져다주기에 앞서 문을 열어 내부를 살피고 쓰레기나 흙덩이 등이 있으면 청소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사들이 다양한 벌레들을 발견하지만 관련 지식이 없는 데다 정부로부터 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대다수 기사가 이상한 벌레를 보면 스프레이 살충제 등으로 잡지만 그냥 빗자루나 물로 밖으로 쓸어내 버리는 일도 있다.

전문가들은 외래생물 유입을 이대로 방치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고려대 배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서식지 환경이 변하면서 항만 등을 통해 유입한 외래종이 다른 나라에 정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렇게 유입된 외래종이 기존 자생 생물의 먹이사슬을 파괴하고 심지어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과 지카바이러스도 사실상 붉은불개미 유입과 같은 맥락인데 외래 생물 종이나 바이러스가 유입되면 국가의 관광수입이 급감하는 등 경제 전반에 직접 영향을 준다"며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트레일러 기사 등 항만산업 종사자들은 "지금처럼 무방비로 컨테이너가 들어오면 건강에 어떤 위해를 받을지 몰라 걱정된다"며 "하루빨리 컨테이너를 통한 외래생물과 바이러스 유입실태를 조사해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