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경찰은 피의자 허모(41)씨가 함구로 일관하는 가운데 '계획성'과 '범행동기'간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사건의 실체는 미궁이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양평경찰서는 30일 살인 등 혐의로 구속된 허씨를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허씨는 지난 25일 오후 7시 30분에서 오후 8시 50분 사이 경기도 양평군 윤모(68)씨 자택 부근에서 윤씨를 흉기로 3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씨는 "부동산 일을 보러 양평 현장에 갔다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라고 진술한 뒤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피의자는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하나, 여러 증거에서 계획적인 범행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먼저 허씨는 범행 당일 휴대전화를 끄고 움직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휴대전화 통화내역 분석에 들어간 경찰은 허씨가 범행 전날인 24일만 해도 10여건의 업무 관련 전화를 건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범행 당일인 25일은 평일(수요일)임에도 발신을 포함, 통화 내역이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허씨가 당일 휴대전화를 끄고 다녔고, 기지국에 위치 정보가 남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신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주택을 둘러보러 양평 현장에 왔다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거나 메모를 하는 등의 근거가 남았어야 한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허씨의 차량 블랙박스도 19일 이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의도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인지, 고장 난 것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범행 당일 영상은 찍히지 않았다.
또 허씨는 25일 오후 3시부터 범행 직전인 오후 7시까지 3차례 윤씨가 거주하는 마을을 오갔다.
물론 주택을 둘러보러 왔다는 설명으로 이 부분에 대한 의혹은 어느 정도 해소된다.
그러나 그의 동선을 살펴보면, 마치 현장을 사전답사라도 하듯 CCTV 위치를 파악하고, 피해 다니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계획범행으로 볼 가장 중요한 단서는 평범한 직장인이 범행도구를 차에 싣고 다녔다는 점인데, 현재까지 허씨는 어떤 흉기를 어떻게 소지하게 됐고, 언제부터 가지고 다녔는지, 어디에 버렸는지 등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앞서 "횟집에서 가져왔다"라고만 진술한 부분도 경찰은 유의미한 진술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계획범행으로 볼 단서는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윤씨를 범행대상으로 선정한 이유가 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허씨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게임을 하면서 고가의 아이템을 거래하려 한 사실이 확인되긴 했으나 이것이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의 장인인 윤씨를 표적으로 삼은 것과 관련이 있는지를 단언하기는 어렵다.
경찰도 허씨가 8천만원의 채무를 진 이유가 게임 중독과 관련 있는지 보기 위해 통신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하고 있으나 범행이 리니지 게임에 대한 불만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입장이다.
경찰도 계획범행으로 의심만 할 뿐 명확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계획범행으로 보기에는 사건 이후 허씨의 행적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허씨는 자신 명의의 차량을 이용해 범행에 나섰고, 윤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집 근처에 버리고 현장을 떠났으며, 범행 후 도주하면서 범행 당시 입고 있던 옷과 신발을 그대로 착용한 상태였다.
계획범행이라면 범행 이후 도피 과정까지 미리 생각하고 움직이기 마련이나, 허씨의 행적은 계획범행으로 보기에는 너무 허술하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이런 점을 토대로 볼 때 허씨가 강도 등 금품을 노린 범행을 위해 양평을 둘러보러 왔다가 사전에 전혀 모르던 윤씨와 마주치자, 금품을 빼앗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것이 현재로써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경찰 관계자는 "계획범행으로 볼 정황은 속속 드러났지만 아직 사건의 실체를 설명해 줄 결정적인 단서는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피의자가 어제(29일) 구속됐으니 앞으로 피의자 조사와 증거조사를 통해 명확한 범행동기 등 실체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