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 뜨거운 열풍 민주주의 정착 '정주행'
군부 독점 수직·비대칭 권력 수평적으로 환원해
현 정당들 이념 대립 매몰 '민주적 대칭성'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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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총괄부국장)
지난해 말 30년 만에 소환된 역사, '1987'의 열풍이 지금까지 뜨겁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1987년 대한민국. 굳이 영화로 되새김질 할 필요도 없이 가슴과 뇌리에 각인된 영상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때 그 광장의 뜨거운 감성이 솟구치는, 한국인만 공감할 수 있는 매우 각별한 시공간이다. 공권력이 시민 박종철을 타살한 이후 1987년 한해에 이어졌던 민주화 과정은 압축성장에 익숙했던 한국인에게도 현기증 날 정도로 전면적이었고 신속했다. 전두환의 4·13 대통령 간선제 호헌조치에 국민은 6월 민주항쟁으로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연세대생 이한열이 목숨을 잃었고, 이한열을 대신한 국민이 거리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그러나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으로 마침표를 찍은 '1987'의 종장은 얼마나 적막하고 고요했던가. 야당 후보들의 분열로 인해 즉각적인 민정시대를 열지 못한 채 반군반민의 과도기를 거쳐야 했으니,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국민의 헌신이 허탈해졌다.

체제 전복은 한 순간에 가능하지만 신체제의 안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1987'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7명의 대통령이 등장한 30년은 민주주의 체제 정착을 위한 국가제도의 정비, 사회구조의 조정, 국민인식의 전환기였다고 봐야 한다. 이제 시작인 문 대통령을 제외하면 6명의 대통령이 이끌었던 각각의 정부는 이런저런 공과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관점에서는 1987년 시작된 신체제의 안정적 지속을 위한 역사적 소임을 나누어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 개인의 능력은 늘 의심받았을지라도 정부 그 자체로는 1987년 6월 정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대한민국 주인은 국민이라는 1987년 신체제의 정신 내에서 정주행을 멈춘 적이 없었다. 박근혜 탄핵은 1987 정신에서 벗어나 역주행한 통치자의 말로를 보여주는 경종으로 유의미하다. 여하튼 1987이후 한세대에 걸쳐 민주주의를 지켜낼 제도와 법령의 정비로 인권은 강화되고, 사회구조의 변혁을 통해 복지가 확대되고, 국민인식은 계층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국애족적이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는가. '1987의 정신'은 느리지만 끊임없이 그 목표를 향해 정주행해 왔다는 거시적 믿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분야 정치는 지난 30년의 진전에 동참한 것인지 늘 의심스럽다. 국민이 스스로 회복해 맡겨준 권력을 대의해 온 정당, 정치인이 1987의 정신을 또렷이 각성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1987'의 역사적 의미는 명료하다. 군부가 독점했던 수직적 비대칭 권력을 국민이 거두어 수평적 대칭 권력으로 환원해 입법·사법·행정 3부에 맡겨준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당은 이념적 독선과 대립에 매몰돼 권력의 민주적 대칭성을 망각한 듯하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지탱하고 받쳐주는 대칭적 이념인데도,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적대를 숙명처럼 여기며 관행적 대립을 반복 중이다. 정당의 독선적 태도로 인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겪는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의 혼란이 심각하다. 자연히 민생이 불안해진다. 정권마다 대한민국은 5년만 생존할 나라처럼 여기고 국정을 펼치니 국력의 낭비가 어마어마하다. 이명박의 4대강과 문재인의 4대강이 다르고, 보수정권의 원자력과 진보정권의 원자력이 어긋나고, 대북관계를 포함한 외교정책은 정권의 이념적 지향에 따라 갈지자를 그렸다. 국민이 회복시켜 준 대칭적 권력을 자신의 이념에 따라 독선적으로 행사한 정당의 폐해가 심각하다.

남한 정당들의 비대칭 권력사고는 북한의 비대칭 전력(핵미사일) 만큼이나 대한민국에 위협적이다. 한국 정당들의 권력에 대한 사고방식이 국민 선택을 이유로 권력을 독점적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1987'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인가. 이 화두를 잡고 '1987'을 감상할 생각이다.

/윤인수 편집국 국차장(총괄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