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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전두환 정권이 1970~80년대 부산 일대 부랑아 수용 목적으로 운영된 형제복지원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했던 김용원 변호사(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 소속 검사)는 17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대책위는 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1년 친필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별첨 정보보고서와 같이 근간 신체장애자 구걸 행각이 늘어나고 있는 바, 실태파악을 하여 관계부처 협조 하에 일절 단속 보호 조치하고 대책과 결과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문건도 공개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사상구 일대에 있던 부랑자 강제수용소로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강제로 가두고 노역을 시키다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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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김 변호사는 1987년 1월 박인근 원장 등을 울주 운전면허 시험장 공사를 하며 수용자 180여명을 감금하고 노역에 동원하는 등 특수감금과 업무상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곳에서 발생한 금전적 이득은 모두 박인근 원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대법원은 1·2심의 유죄 판단에도 불구하고 2차례 파기환송한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김 변호사는 "박 원장의 횡령액은 11억원에 달했지만 검찰 상부의 압력으로 2년동안 6억 8천만원을 횡령한 것으로 기소했다"며 "형제복지원 전체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 등에 대한 조사는 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변호사는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에게 박 원장 석방과 사건 종결을 지시했고 87년 5월에는 석방된 원장을 칭찬했다"며 "검찰총장과 부산지검 윗선에서도 석방 방안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받고 공소장을 축소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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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형제복지원의 시작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의 내무부훈령 제410호다. 해당 훈령은 부랑인 신고 단속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을 담고 있다. 이 훈령을 근거로 전국 곳곳에 수용 시설이 세워졌다.

현재 경기도 광주에 사는 이향직(47)씨도 중학교 1학년 때인 1984년 부산의 한 파출소에서 경찰 손에 이끌려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4년간 생활했다. 이씨는 "입소하는 날부터 빗자루와 각목을 이용한 구타에 시달렸고 공부도 못해 출소 후 검정고시로 학업을 끝냈다"며 "박 원장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일개 하수인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서울 강동갑) 의원 등 국회의원 73명은 지난 2016년 7월 내무부 훈령 등에 의한 형제복지원 피해사건 진상 규명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지난 10일 심사소위에 상정됐다 계류 중이다. 형제복지원 진상 규명을 포괄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지난해 1월 발의됐지만 계류 중이다.

민주당 소병훈(경기 광주갑) 의원은 "형제복지원은 개별 시설에서의 악행일 뿐 아니라 부산시에 부랑인 수용을 위탁 받는 등 국가 관여가 상당부분 있었던 곳"이라며 "지금도 피해자들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인권문제"라고 설명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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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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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