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난 무엇을 해야하나
"아침은 오고 말 것"이라며 분연히 일어설때 아닌가
'시대'에 앞장 설 수 없는가… 강주룡·윤동주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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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걸출한 여성 노동운동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강주룡(1901~1932)을 들겠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평양 평원고무농장에서 일하던 강주룡은 1931년 5월 을밀대 지붕 위에 올랐다. 12m 높이였다. 사다리도 없이 긴 광목을 던져 잡고 올랐다. 평양에서 가장 높으면서도 사람이 많이 지나는 곳이었다. 열악한 노동 현실 속에서도 쥐꼬리 임금마저 일방적으로 깎았던 일제의 공장주를 소리 높여 고발했다. 한반도 첫 고공농성의 순간이었다. 9시간 반 만에 경찰에 붙잡혀 옥에 갇힌 강주룡은 단식투쟁을 벌였다. 풀려났다가 또다시 잡혀 들어갔다. 또 단식투쟁이었다. 임금삭감을 철회하지 않으면 굶어 죽겠다고 버텼다.

공장은 강주룡의 얘기를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료들은 임금이 원상 회복되었으나 풀려난 강주룡은 그 이듬해 8월 평양의 빈민굴에서 서른한 살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밥을 굶으면서 옥고를 치르느라 얻은 병 때문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 동료 여성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한 첫 노동 운동가 강주룡을 당시 신문은 '을밀대의 옥상녀'라 표현했다.

온 나라가 '미투(#Mee Too·나도 당했다)'에 휩싸여 있다. '안희정 사태'가 그 정점에 섰다. 시중의 이야깃거리로는 남북정상회담 얘기마저 압도하고 있다.

'미투'가 처음 시작된 할리우드에서는 이제 '타임스 업(Time's Up·한 시대가 끝났다)' 운동이 일고 있다 한다. 우리 역시 '미투'를 넘어 '새 시대 운동'으로 갈 태세다. 무엇인가에 눌려 말 못하던 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뒤에 서서 팔짱을 낀 채 말로 하는 것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에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이제는 남자들도 '미투'에 나설지 모른다. 조직의 눈치를 보느라, 가족의 부양 책임감에, 참았던 각종 부조리를 고발하는 남자들이 나타날 때 '사회'는 크게 바뀔 거다. 남녀 없이 불합리의 사슬을 끊어내고 떨쳐 일어설 때 '한 시대'는 끝이 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진 '을밀대의 옥상녀' 강주룡처럼.

'처럼'이란 두 글자를 제목으로 삼은 책이 있다. 윤동주(1917~1945)의 시 평론집이자 윤동주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의 '처럼'. 윤동주의 시 '십자가'에서 따왔다.

'괴로웠던 사나이,/행복(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十字架)가 허락(許諾)된다면'. '십자가'의 한 구절만 읽어도 나보다는 남을 위해 예수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피 흘려 희생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절절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윤동주의 또 다른 시는 우리는 과연 강주룡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쉽게 쓰여진 시'의 일부다.

'미투'로 '시대'가 바뀌고 있는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주변에는 등불을 밝혀 내몰아야 할 어둠은 없는가. 언제까지 나는 남의 얘기만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해야 하는가. 이제 그 시대는 끝났다고, 그리하여 아침은 마침내 오고 말 것이라고 외치면서 분연히 일어설 차례가 나에게 오지는 않았는가. 내가 가진 알량한 것들을 죄다 버리고, 눈에 밟히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시대'를 앞장서서 맞이할 수는 없는가. 강주룡처럼, 윤동주의 시처럼.

/정진오 인천본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