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수요일 오전 집무실이 아닌 관저 침실에 머물며 뒤늦게 첫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구조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일 오후 5시 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방문하기 전에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관저에서 만나 회의하며 대응책을 논의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최씨가 당일 오후에 청와대에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상황보고를 받은 뒤 중대본을 방문하기 전까지 불분명했던 7시간가량의 행적이 대체로 규명됐다.

28일 세월호 참사 보고서 조작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의 중간 수사결과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관련 첫 발생 보고를 서면으로 받은 시각은 당일 오전 10시 19분∼10시 20분께로 파악됐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회 청문회 등에서 첫 보고 시점이라고 주장했던 10시보다 20분가량 늦었다.

검찰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9시 19분께 언론사 TV 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이어 9시 24분께 청와대 문자메시지 발송시스템을 통해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후 센터는 해경 상황실을 통해 선박 명칭, 승선인원·출항시간·배의 크기, 구조 동원 현황, 구조 인원수를 차례로 파악했고, 9시 57분께 '구조된 인원 56명이 사고지점 북쪽 4마일 거리에 위치한 서거차도로 이동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완성했다.

김장수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오전 10시에 사건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전달받고는 곧바로 보고하려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집무실이 아닌 관저의 침실에 머물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등 공식 일정을 마치면 주로 집무실이 아닌 관저로 돌아와 근무하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시인 2014년 4월 무렵에는 정호성 당시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에게 '수요일은 공식 일정을 잡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는데, 세월호 당일이 수요일이어서 박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에도 관저에 머물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장수 당시 실장은 관저에 머무는 박 전 대통령에게 상황보고서 1보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안봉근 당시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대통령이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대통령 보고가 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에게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해 박 전 대통령이 머물던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신 센터장은 10시 12분께 상황보고서 1보를 완성한 후 상황병을 통해 관저 전달을 지시했다.

이에 상황병은 관저까지 뛰어가 10시 19분께 내실 근무자인 김모씨에게 보고서를 전달했지만, 김씨는 별도의 구두 보고 없이 상황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올려두기만 했다.

이 와중에 김 안보실장은 위기관리센터로 내려가 박 전 대통령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박 전 대통령은 좀처럼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안봉근 비서관이 10시 12분께 이영선 전 경호관이 준비한 승용차를 이용해 본관 동문을 출발해 관저로 갔고, 10시 20분께 관저 내부에 들어가 침실 앞에서 수차례 부른 후에야 박 전 대통령은 밖으로 나왔다. 세월호 상황보고서 1보를 접한 것도 이때로 추정된다.

안 비서관은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했고 박 전 대통령은 "그래요?"라고 말하며 침실 안으로 들어간 뒤 10시 22분에야 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전 대통령은 김 실장에게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 여객선 내 객실, 엔진실 등을 철저히 수색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 시각은 당시 청와대가 세월호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으로 잡고 있던 10시 17분을 이미 넘겨 구조 불가능한 상태로 선체가 침몰한 상황이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침실에 머물며 상황보고가 이뤄지지 못하는 사이 청와대 스스로 골든타임으로 여겼던 시각은 이미 지나버렸던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린 뒤 오후 5시 15분 중대본 방문까지 무엇을 했는지도 이번 수사를 통해 파악됐다. 행적이 불분명했던 7시간가량의 공백은 갖가지 의혹을 낳았고,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도 쟁점이 됐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 30분께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구조 지시를 내린 뒤로는 세월호 구조 문제를 놓고 오전 내내 별도의 연락을 하지 않은 채 관저에 머문 것으로 파악됐다. 인후염에 걸린 상태여서 오전 10시 41분께 간호장교로부터 의료용 가글액을 전달받은 게 전부였다.

박 전 대통령은 오후 2시 15분께 청와대를 찾아온 최순실씨를 관저에서 맞이했다. 이미 방문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도 관저에 대기하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 문고리 3인방 등 5인은 관저 내실에서 40분 가까이 회의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이 결정됐다.

정호성 비서관은 5인 회의가 마무리된 오후 2시 53분께 윤전추 행정관을 시켜 박 전 대통령의 머리 손질을 담당하는 이들을 청와대로 급히 불러들였다.

머리 손질 담당자들은 오후 3시 22분께 청와대로 들어왔다. 머리 손질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선 것은 오후 4시 33분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중대본에 오후 5시 15분께 도착했다. 이동하는 데 40분가량이 걸린 것은 원래 경로로 잡았던 도로에서 다른 차량끼리 교통사고가 있어서 우회하느라 보통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중대본 방문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은 오후 6시에 관저에 복귀했다. 당시는 세월호가 수면 위에 선수 일부만 남은 채 선체 대부분이 물밑으로 가라앉은 때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