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인', '학부형', '정상인'….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써 왔지만 성별이나 장애 유무에 따른 차별적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들이다.

서울시가 이처럼 '차별 철폐'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행정 용어를 고치고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16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가 최근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고친 행정 용어는 미망인을 포함해 13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망인'(未亡人)이란 '춘추좌씨전 장공편'에 나오는 말로 '남편을 여읜 여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 단어를 풀이하면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미처 그러지 못하고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양성평등에 토대를 둔 현대의 성 관념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올해 2월 이 단어를 직접 언급하며 "한글단체와 힘을 합쳐 품격 있는 단어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행정 용어 점검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망인'을 대신하는 말은 '고(故) ○○○씨의 부인'이다.

'순직한 ○○○씨의 미망인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는 말은 '국가유공자·상이군경·전몰군경·의사자 ○○○씨의 부인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로 순화된다.

'학교에서 학부형 모임에 참석하라는 요청이 왔다'는 식으로 흔히 쓰이는 '학부형'(學父兄)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학부형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으로 학생의 보호자를 이르는 말'이지만, 한자 조어는 '아버지'와 '형'만 들어 있어 여성이 배제돼 있다. 시는 이 때문에 '학부형' 대신 '학부모'(學父母)를 쓰라고 권고했다.

또 '어머니가 죽거나 이혼해 홀로 있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편부'(偏父)와 '아버지가 죽거나 이혼해 홀로 있는 어머니'를 뜻하는 '편모'(偏母)는 특정 성을 지칭하지 않는 중립적인 단어인 '한부모'로 바꿨다.

이 밖에 장애 유무와 관련된 단어도 순화 대상에 올랐다.

'정상인'은 사전적 의미로는 '상태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사람'이다. 그런데 행정 용어로는 '장애인'과 대조돼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정상인이 장애인 등록증을 위조했다'는 식으로 종종 쓰였다.

시 관계자는 "장애인과 대비하는 의미로 '정상인'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장애인에 대해 '정상이 아니라는' 사회적 차별을 전제하게 된다"며 "이런 취지에서 '비장애인'이라는 단어로 고치라고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장애인을 완곡하게 이르는 '장애우'(障碍友)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이 장애인을 부를 때만 쓰이는 단어로, 의존적인 존재로 비치게 할 수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따라 '장애인'으로 쓰기로 했다.

또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조선족'(朝鮮族)은 '중국 동포'로 바꾼다.

시 관계자는 "미국에 사는 우리 겨레는 재미 동포, 일본에 사는 우리 민족은 재일 동포라고 부르는데 중국만 유독 '조선족'이라고 부른다"며 "다른 지역과 균형을 맞추는 차원에서 중국 동포로 바꾸기로 했다"고 취지를 전했다.

이 밖에도 '불우 이웃'은 '어려운 이웃'으로, '결손 가족'은 '한부모 가족'이나 '조손 가족' 등으로 바꾸라고 권고했다.

'포트폴리오', '하우징 페어', '캠퍼스타운', '프로모터', 'RMS' 같은 어려운 외래어는 '실적자료집', '주택 박람회', '대학촌' 또는 '대학거점도시', '행사기획자', '기록관리시스템'으로 각각 순화했다.

앞서 서울시는 우리말 사용을 촉진하고자 2014년 '서울특별시 국어 사용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이 조례는 공공기관의 공문서를 대상으로 ▲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는 국어를 사용 ▲ 저속하거나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 ▲ 무분별한 외래어, 외국어, 신조어 사용을 피할 것 등의 원칙을 제시했다.

시는 이에 따라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를 꾸려 이번을 포함해 총 145개 행정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고쳤다.

시 관계자는 "조직 내 불필요한 외래어를 지양하자는 운동을 펼치는 등 올바른 공공언어 사용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