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공식 실무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에서는 예정에 없던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면서 즉석에서 기자회견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애초 배석자도 없는 양 정상의 단독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론과 같은 내밀한 논의가 장시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취재진과의 문답이 이어지면서 진정한 의미의 단독정상회담은 20분 남짓 진행됐다.
양 정상은 22일 정오께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이 오벌오피스에서 만나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을 향한 한미동맹, 세계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길!'이라고 적었다.
한미 정상은 드레스코드를 맞춘 듯 모두 감색 정장에 흰색 셔츠, 붉은색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착용했다.
두 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에 앞서 한미 취재진 앞에서 모두발언을 했다.
먼저 모두발언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중요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 회담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라며 "싱가포르 회담이 열릴지 안 열릴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지도 않을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한 터라 외신 등은 이 발언을 긴급뉴스로 전했다.
이어 모두발언에 나선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나도 최선을 다해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돕고 트럼프 대통령과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백악관 실무진은 두 정상의 모두발언이 끝난 뒤 취재진을 물리고 통역만 둔 채 배석자 없이 단독회담으로 이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취재진이 북미정상회담 성사 여부 등을 묻는 말에 트럼프 대통령이 답변하기 시작하면서 계획은 어그러지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집중된 질문에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하지 않을 것", "6월에 회담 열리지 않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등의 답변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과의 문답 중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나서 비핵화와 관련한 입장이 달라졌다는 취지로 말한 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말씀하셔도 좋다"며 답변 기회를 문 대통령에게 넘겼다.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 시각이 미국 내에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과거에 실패했다고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라고 미리 비관하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 때문에 북미정상회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게 있는데 저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제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다소 뉘앙스가 다른 두 정상의 발언에 긴장이 감도는 분위기였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농담한 몇몇 대목에서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을 얼마나 신뢰하는가'라는 물음에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능력을 굉장히 신뢰한다"며 "문 대통령이 대통령이어서 한국은 아주 운이 좋다"고 말하자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이어 문 대통령을 향해 '내가 잘 (답변)했나요. 이 이상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는 취지로 농담하자 양 정상은 웃으며 악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한 생각을 묻는 말에 문 대통령의 답변이 끝나고 나서는 "통역이 필요 없겠다. 왜냐하면, 좋은 말일 것이기 때문"이라는 농담으로 '즉석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전상천기자 junsc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