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납북 풍북호 최원호 선장
한국전쟁 활동 밝혀져 홀로 처형
아들 노력끝 '국가유공자'로 인정
사망일 대신 납북일 '위패' 모셔

1967년 6월 5일 조기잡이 어선 풍북호의 최원호 선장(당시 57세)은 연평도 서북방 해상에서 선원 7명과 고기잡이를 하던 중 북한 경비정에 납북됐다.

3개월 뒤 선원 5명이 돌아왔지만, 최 선장은 북한에 억류됐다. 최 선장의 아내 김애란(2005년 사망)씨는 생전인 2002년 4월 북측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행사에서 남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2009년 정부는 최원호 선장이 한국전쟁 때 세운 공적을 인정, 국가유공자로 등록했다. 최 선장이 납북되고 51년이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 국립현충원은 최원호 선장의 위패를 그의 아내의 유골과 함께 충혼당 109호실에 봉안했다. 납북자 위패가 충혼당에 봉안되는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최 선장은 한국전쟁 당시 8240 켈로유격백마부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이 부대의 하나뿐인 동력선 북진호(40t급) 함장으로 보급, 포로 수송, 민간인 대피 등을 담당했다.

정부는 2013년 최 선장에게 화랑 무공 훈장을 수여했다. 납북자에게 무공 훈장이 수여된 것 역시 최 선장이 처음이었다. 최 선장의 아내 고 김애란 씨에 대한 켈로부대원 활동 경력도 정부가 인정해 국가유공자로 등록했다.

미극동사령부 산하 첩보 부대인 켈로부대(KLO·Korea Liaison Office) 소속이었던 최 선장 부부가 그 공적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들 최성용(66)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의 노력이 컸다.

미극동사령부가 한국전쟁 전 창설한 켈로부대는 1951년 창설된 8240부대에 편입돼 방첩과 유격 임무를 수행했다. 최 선장은 백령도, 옹진반도 서북부, 압록강 하구를 담당한 레오파드부대(일명 동키부대) 소속이었다.

납북된 최 선장은 켈로부대 소속이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른 선원들과 함께 가족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억류됐고, 1970년 무렵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충혼당에 봉안된 최원호 선장 위패에는 사망일 대신 납북일이 적혀 있다. 충혼당에 봉안된 유공자들 가운데 명패에 납북 일자가 기록된 것은 최 선장이 유일하다.

최성용 대표는 "아버님 위패와 어머님 유골을 충혼당에 모시고 싶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며 "아버님이 납치된 날에 부모님을 함께 모시니 제 입장에서는 뜻깊은 날"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또 "이번 일을 제 '개인 행사'로 보지 않고 도움을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